[기고] 최창석 전 공주문화원장

사월이라 초여름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비온 끝에 볕이 나니, 날씨도 화창하다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꾸기 자주 울고

보리 이삭 패어나니 꾀꼬리가 노래한다.

농사도 한창이요

누에농사도 바야흐로 한창이다

남녀노소 골몰하여 집에 있을 틈이 없다

적막한 사립문을 나무그늘 아래 닫았도다.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가 1816년에 지은 농가월령가 '사월령'의 첫 대목이다. 요즈음 눈을 들어 주변을 보면 온통 천지가 녹색의 물결로 눈이 시원하다.

이는 여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것인데 바로 5월 5일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立夏)이다. 입하는 또 다른 말로 '보리가 익을 무렵'이라는 뜻으로 '맥추(麥秋)'라고도 한다.

입하 무렵이면 한낮에는 여름 기운이 느껴지고, 신록이 짙어지며, 개구리가 짝을 찾아 울기 시작한다.

농촌에서는 보릿고개의 먹거리로 연한 쑥을 뜯어 쌀 몇 주먹과 섞어 쑥버무리를 만들어 요기를 하였는데, 나이가 웬만큼 든 사람들은 대부분 그 맛을 안다. 또 입하 전후에 수확한 차를 두 번째 땄다고 하여 '두물머리'라고 하는데 다성이라 불리는 초의선사는 입하 전후의 차가 최상품이라 평하였다.

차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 것은 계절이 그만큼 좋아서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어느 시인도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말했지 않나.

오늘 아침 공주시공설운동장에서 운동하는데 멀리 떨어진 백제오감체험관 뒤쪽의 연못에서 나는 개구리 울움소리가 길 건너 이곳 운동장까지 요란하게 들렸다. 공주 사람들의 심신수련장인 관풍정 활터에는 라일락이 피어 그 진한 향기를 더하고 있고, 주변의 나무들은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짙어지며 보는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며칠 전 집사람이 만들어 함께 먹었던 쑥버무리도 이 계절 미각이다. 아침 산책길에 귓불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은 주변의 햇살과 함께 더없이 싱그러움을 느낀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정말로 오감으로 느끼는 행복이다.

어느 광고에서 "뜯고, 씹고 맛보고 이것이 행복이다"라고 하던데 지금 우리가 5월에 오감으로 느끼는 행복에 비할 수가 있을까.

농촌에서는 이 무렵 잡초가 무성하게 올라오고 해충이 번지기 시작하여 농사일이 바빠지는데, 위 가사에서 보듯이 모든 사람들이 집에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코로나로 갇혀 지내던 실내에서 현관문을 활짝 열고 자연으로 돌아가자. 옛 농경사회처럼 모두가 농사일은 하는 것은 아니기에 각자의 생업과 취미와 여가에 따라 대문을 박차고 대자연을 마음껏 호흡하자.

때마침 코로나 확산방지를 위해 착용하던 실외 마스크 착용의무제도 5월 2일 자로 해제되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2년 동안 코 막고, 입 막고 방안에서의 생활로 제대로 자연의 오감을 느끼지 못했던 불쌍한 우리 신체의 원초 감각을 되살려 주자.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장자크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설파하여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이제 우리도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을 아끼면서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의 손주, 증손주 또 그 이후의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최창석 전 공주문화원장
최창석 전 공주문화원장

어느 누가 "지금의 이 자연은 내 것이 아니라 나의 후손들로부터 빌려쓰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빌려 쓰는 사람이 잘 빌려 쓰고 깨끗하게 물려주어야지, 물건을 망친 채로 되돌려 준다면 후손들에게 그 원망을 어떻게 들을까. 아름다운 5월, 자연을 오감으로 즐기면서 기후 재앙을 예방하고, 환경을 더욱 생각하는 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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