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전 세광고 교장 

박완서 선생의 에세이는 일상의 존재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깊은 관심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성찰을 촉구하기도 한다. 『모래알 같은 진실이라도』 라는 수필집 중, '천사의 선물'이라는 내용이 그렇다. 일본 재단의 초청으로 연수를 간 작가가 심신장애자 특수학교를 견학하고 느낀 내용을 담았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나을지는 몰라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은 우리와 같은 수준일 것이라는 예단을 무색하게 오히려 열등감을 느꼈다고 작가는 토로한다. 겸손하고 헌신적인 직원들과 부러운 복지인프라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다.

2022년 1인당 GDP가 일본을 앞지를 거라는 기쁜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증거고 자부심을 가질 만 하지만, 우리 국가의 품격도 일본을 능가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쟁은 그 시금석이 될 것 같다.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예산 확보를 요구하고 있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가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초래하면서 인터넷상에 논쟁이 분분하다.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피로도가 심화되자 정당의 대표가 '반문명적 시위'라며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장애인은 약 260만 명으로, 국민 20명 중 1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적지 않은 숫자이고 단순한 시장논리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 다. 유의할 것은 선천적 장애인은 10% 정도에 불과하고, 90%는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점이다. 국민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 있고, 내 가족이나 우리의 동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사회구성원 모두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최원영 세광고 교장
최원영 K-메디치 연구소장·전 세광고 교장 

선진국의 위상은 경제적 위치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수준이 어떠한지에 달려 있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단계 이상으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많은 사회적 기반을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담 너머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똑같은 사다리를 제공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능력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기회의 평등이 공정을 담보한다는 생각은 구조적인 불평등을 간과하는 위험이 있고, 사회적 연대를 무너뜨린다. 공평함은 재화를 균등하게 분배(Equality)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에 필요한 만큼의 재화를 차등 분배(Equity)함으로써 같은 조건에 서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국가 복지 정책의 출발이 여기서 시작되어야 하고, 이는 현대복지국가의 이론적 바탕이 된 존 롤스(J. Rawls)의 주장이기도 하다.

국가의 제도적 지원과 더불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민의 공감대도 중요하다. 신영복 선생이 말씀하셨듯이 사회적 관계의 최고 형태는 애정과 실천보다 같은 위치에서 생각해 보는 '입장의 동일(同一)함'에 있다. 사회적 약자와 같은 입장에 서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때 공동체의 품격은 고양된다. "장애는 불편하다. 그러나 불행하지는 않다!"라는 헬렌 켈러(H. keller)의 자존감 높은 메시지가 우리 장애인들의 언어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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