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싱그러운 오월이다. 멀고도 긴 코로나 터널도 이제는 벗어나는 듯하다. 오월은 무엇이든 생동하고 그리워지는 달이다. 어버이날, 부처님오신날이 있고, 거기에 스승의날도 있다. 특히 스승의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스승의날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아는가. 바로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에서 따왔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여 존경받는 것처럼, 스승이 존경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올해는 어버이날이 부처님오신날과 겹치고 스승의날과 함께 모두 일요일이다. 어버이와 부처님, 그리고 스승! 모두 존경의 대상이다. 우리 역사에서 이 셋을 관통하는 인물이 있다. 누굴까? 바로 세종대왕이다. 드라마'태종 이방원'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보았는데, 그 이유는 태종이 세종을 낳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세종이 없었다면? 나만 그런지 몰라도, 일단 끔찍하다. 문자는 지금도 한자를 쓸 것이고, 민주주의는 아주 더디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그 중심에 한글이 있다. 한글, 아니 훈민정음을 만든 분이 바로 세종이다. 그러니 세종은 만백성의 어버이요, 부처님이요, 스승이라 아닐 수 없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난 뒤, 새 문자로 용비어천가를 짓게 하고, 이어서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짓는다. 나는 특히 월인천강지곡에 주목한다. 천 개의 강에 비친 달의 노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난 이를 늘 보고 있는데, 암만 봐도 가슴을 울리는 서사시요, 혁명적 저작이다. 용비어천가는 한자 위주이고, 석보상절도 한자를 앞세웠다. 그런데 유독 월인천강지곡은 훈민정음을 앞세우면서 크게 쓰고, 한자는 그 밑 오른쪽 귀퉁이에 조그맣게 썼다. 아, 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세종은 왜, 한자보다 훈민정음을 앞세웠을까?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은 훈민정음으로 지은 최초의 언해 불경이다. 석보상절은 부처님의 일대기를 쓴 최초의 산문이고, 월인천강지곡은 최초의 한글 찬불가이다. 사랑하는 왕비 소헌왕후가 죽자, 세종은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에게 명한다. 돌아가신 너의 어머니가 좋은 곳에 가 태어나도록 불경을 지어 펴내라고. 백성이 알아듣기 쉽게 어려운 한자가 아닌, 훈민정음으로 지으라고 당부한다. 이때 이를 도운 이가 있다. 바로 내가 또한 존경하는 신미대사다. 월인석보 등에 그에 관한 근거가 밝혀져 있다. 신미는 세종이 정말 아끼고, 종교적으로 기댔던 고승이다. 조선왕조실록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관련 기사가 69건이나 나온다.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월인천강지곡! 달이 천 개의 강을 비추는 노래라는 뜻이다. 세종은 첫 곡과 마지막 곡을 제외하고, 2행시로 부처님의 공덕을 노래했다. 모두 583수다. 실로 장편 대서사시가 아닐 수 없다. 읽다 보면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저려온다. 아내 소헌왕후를 그리는 남편 세종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언젠가 미국 뉴욕에 간 적이 있다. 저녁이었다. 공항에서 걸어 나오는데, 하늘에 보름달이 두둥실 떠 있었다. 앗, 이역만리 미국 땅에도 달이 떠 있다? 그렇다. 달은 어디에나 비춘다. 세종은 아마 자신이 만든 훈민정음이 저 달처럼 어디에나 비추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월인천강지곡으로! 그건 세종의 위대한 자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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