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개인이 가꾸는 정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 적 있다. 주인의 인생철학과 꽃에 대한 애정,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 나도, 정원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갖게 했다. 나이가 들면서 내일을 계획하는 일이 망설여지는데 60세 이후 시작하여 정원이 놀이터고 쉼터이며 아름다움도 이웃에게 나눠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제주 할머니 모습은 꽃처럼 고왔다. 야생화 정원을 가꾸는 분은 나리꽃만큼은 어디서 자라든 그대로 둔다고 한다. 당신을 믿고 지지해준 시아버지가 준 꽃씨가 나리꽃이었기에 나리꽃은 시아버지 마음의 꽃이다.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와 정원을 가꾸던 분은 방송 촬영이 끝나기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생전 앉아 쉬던 의자에서 보이는 정원은 꽃빛이 날아올랐다.

그러나 아름다운 정원이 되기까지 고된 노동의 시간과, 흘린 땀의 열정과 기다리는 인내와, 실패의 무게는 아름다움에 가려 있어 보지 못했다. 화면이 비춰주는 부분만 보고 도전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다. 마침 올해 귀농한 남편은 밭 근처에 농막을 설치했다. 이른 봄이었기에 주변 넓은 땅을 나만의 꽃밭으로 가꾸리라 계획 세웠다.

흙도 일구기 전, 꽃을 상상했고 나무 그늘의 시원함을 미리 느끼며 행복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야생풀이 자라던 곳이라 뽑고 뽑아도 다시 나왔고, 흙 속에 묻힌 돌멩이며 썩지 않은 나무토막들을 치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시작하자마자 주변 환경으로 자신감을 잃었다. 그 사이 민들레꽃이 피더니 제비꽃도 피었다. 냉이꽃 아래 숨어있던 청개구리를 보았을 때는 마음이 흔들렸다. 망설이는 동안 돼지감자 싹이 올라왔다. 성장 속도가 빨라 주변을 모두 차지할 것 같아 불안하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가을날 돼지감자꽃도 아름다운 풍경이 될 것이다.

도라지 씨를 뿌린 밭은 풀과의 싸움 중이다. 봄 가뭄이 심해서 오래도록 싹이 나오지 않더니 며칠 전부터 마른 흙이 갈라지며 나오기 시작했다. 가까이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싹에 비해 멀리서도 보이는 것은 풀이다. 마치 제 자리인 양 차지하고 거침없는 풀의 힘을 보면서 도라지가 자라서 꽃피울까, 걱정이다.

목요일 수업하는 학교는 야외 베란다가 있다. 2층 교무실 야외 베란다는 희귀한 화분이 여러 개다. 새롭기도 하고 싱그러운 초록빛이 눈을 맑게 해줘서 즐겨 쳐다보는 공간이다. 4층에는 고추 화분이 있다. 시니어 학교 지킴이 분들은 4층 휴게실을 사용한다. 그분들이 가꾸는 화분이라고 짐작한다. 지금 고추꽃이 폈다. 나는 학교 울타리에 핀 장미보다, 화단에 예쁘게 가꾸어 놓은 꽃보다 고추꽃이 더 예뻐서 오가며 즐긴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농막 주변에 꽃밭을 만들려던 생각을 접었다. 내 욕심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 둘러보니 찔레꽃도 피었고 산딸기도 열매를 맺었다. 뽕나무 오디도 익어간다. 있는 그대로 지켜보며 즐겨야겠다. 모두 한순간은 꽃일 때가 있었을 테니까.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