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기록은 힘이 세다. 스쳐 지나갈 것도 기록을 통해 남는다. 필자는 코로나19 펜데믹 일상을 관점 전환을 통해 지속적으로 기록해왔다.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연구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자유주의자(liberalist)로서 강제의 일상화, 더 정확히 말하면, 과시적 공공성에 대한 답답함을 인권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자율이 거세된 강제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답답함을 느꼈다면 그건 필자만의 예민함일까. 통제와 강제가 일상화되고 그 일상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북한은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국외자(局外者)들은 북한이 자유스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국내자(局內者)들은 지상낙원쯤으로 여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회적 훈습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이 대목에서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다. 코로나19라는 위중한 상황에서 무슨 다른 시선이냐고, 하지만 흔히 독재로 일컬어질 수 있는 '공공성 과잉'은 바로 그런 일반의 생각을 파고든다. 위험 앞에서 모두를 함구하게 만들어버리는 극적인 효과다. 그럼에도 비망(備忘)을 위해 기록을 한 것은 코로나 대처 과정에서 크게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을 돌아보자는 의도다. 특히 방역이란 미명으로 벌어진 인권침해 사례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라도 나올 만한 것들이었다. 셀 수없이 많지만 몇 가지만 들어보자.

사례 1: 부산의 19번과 30번 확진자는 교회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코로나19에 걸렸다. 이후 이들에 대한 동선 공개로 수련회에 가기 전 같은 시간, 같은 숙박시설에 머문 사실이 알려졌다. 설상가상 두 사람이 불륜 커플로 몰린 것은 13번 확진자인 약혼자도 같은 교회에서 이들과 함께 수련회에 다녀왔고 이 두 사람보다 일찍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산시가 확진자 역학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해당 교회의 부산 19번 확진자는 13번 확진자와 약혼한 사이"라는 사실까지 밝힌 탓이다. 이런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약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호텔에 드나들었다는 입에 담기 어려운 댓글을 달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졸지에 불륜 커플로 둔갑되어 버렸다.

사례 2: 확진자들이 방역 당국의 동선 공개로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확진자들 동선을 토대로 사생활을 추리하는 글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다. 한 확진자의 경우 부인과 자녀는 음성 판정을 받았는데 같은 집에 사는 처제만 양성 판정을 받아 불륜 아니냐는 억측에 시달렸다. 또 다른 확진자는 특정 시간대에 노래방을 수차례 방문했던 사실이 공개되면서 '노래방 도우미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례 3: 서울 이태원의 한 클럽을 방문했던 남성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19 대응팀은 이 남성의 연령, 성별, 거주지, 동선 등을 공개했고 근무지는 몇 층 어느 지점이라는 사실까지 표기하여 확진자가 누구인지를 곧바로 특정할 수 있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국은 클럽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동선을 추적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이런 과정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성소수자들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커밍아웃'을 당하게 됐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사례 4: 각 지자체는 홈페이지 첫 화면에 코로나19 현황을 띄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일반 시민이 가장 많이 보는 것은 '확진자 동선'이다. 확진자가 언제 어디를 어떻게 이동했는지 분 단위로 발표하고 있다. 시장ㆍ군수들이 자신의 서비스 계정에 직접 올리는 경우도 있다. 경기도 여주시에서도 시장이 직접 자신의 계정에 확진자들의 개인정보와 동선을 공개해 물의를 빚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K방역 성과를 자화자찬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만일 그의 말처럼 K방역이 성공했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수많은 인권침해를 통해 얻은 대가(代價)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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