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그대 앞에서는 몰랐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면 영상이 나타납니다. 글은 물론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당신의 아픔과 슬픔은 곧 민족의 수난이요 고통이었지요. 그대 영혼은 너무나도 큰 슬픔을 안고 있기에 더 아름답습니다. 그 슬픔을 공감하기에 만날 때마다 더 애절합니다. 썩어 문드러지는 살점을 뚫고 새 핏줄을 이어 뿌리와 가지로 주고받는 당신의 생명은 가슴 아리도록 숭고합니다. 억울해서 이대로 떠날 수 없다고 오기로 버티었던가요. 얼마나 기가 막히고 또 막혔으면 당신의 속이 온새미로 내려앉아 버렸을까요. 그 아픔을 미처 생각 못하고 신기한 듯 텅 빈 몸속에 들어가서 살피기도 했던 날, 그날도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고 미안해서 후회했답니다. 오늘은 당신의 억장이 무너져 텅 빈 몸속을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해보다 조금 더 굵어진 새 생명 줄을 한참 어루만져 보았습니다. 감히 견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당신을 보면 질곡의 세월을 견딘 내 삶이 자꾸만 알찐거립니다. 그래서 더 공감 하는가 봅니다.

임진란이 불태워버린 법천사지 황량한 벌판에 고즈넉하게 서서 사찰의 역사와 민족의 수난까지 슬픔을 온몸으로 품고 천년을 버티어 온 늙은 느티나무는 올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십오여 년 전에는 대접 받지 못하고 슬픈 역사만 지닌 채 길가에 서있는 노거수가 초췌해서 짠했다. 지난해 만났을 때는 절터 복원으로 길가가 아닌 안쪽 뜰이 되어서 후계목인 듯, 비서인 듯 젊은이를 거느렸고 외로움보다는 간수해온 사연들이 당당하게 대접받는 희망이 보였다. 간간이 老木을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십오여 년 전의 기억에는 어른 옆에 자리 잡은 손자 같은 어린 나무를 보지 못 한 것 같아서 당시 동행했던 분에게 혹시 느티나무 사진 구할 수 있는지 부탁했더니 마침 찾았다며 보내왔다. 말 그대로 어른에게 때 쓰는 개구쟁이처럼 삐딱하게 폼을 잡고 있는 사진 속 아기나무가 오늘은 청년이 돼 있다.

불타지 않은 지광국사 돌탑은 도둑들에 의해 일본까지 끌려간 걸 찾아왔단다. 조각난 몸체를 시멘트로 복원해서 지금 대전 국립문화재 연구소에서 제 본향인 법천사지에 건립중인 문화재 전시관으로 오려고 기다린단다.

문화재 공부를 하면서 답사를 많이 다녔지만 지광국사 탑비는 다른 탑비에 비해 조각 수법이 섬세하고 세련미가 돋보인다. 용두와 측면의 용문이 화려하지만 품격을 갖추었다. 비의 몸체를 받치고 있는 비희의 등에 세긴 임금王자를 보면 지광국사께서 왕에는 못 미치지만 버금갈 만큼 대단한 존재였음을 짐작케 하며 법천사가 얼마나 거대한 사찰인가를 짐작케 한다. 불타지 않은 탑과 탑비가 문화재로 관심을 받을 동안에도 노거수는 사찰과 민족의 숱한 사연들을 지니고 수난을 겪으며 고래심줄 같이 생명을 유지해야만 했다. 하늘과 땅이 심어주고 키워주고 하겠지만 세찬 칼바람에도 한여름 땅이 갈라지는 가뭄에도 굴하지 않고 모진세월을 버티고 견딘 힘은 노거수의 영혼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숭고하다.

누 백년 누천년 수난과 서러움이 켜켜이 쌓인 상처만으로도 큰 고통일 텐데, 살 속에 박힌 큰 돌을 보는 순간 너무나 짠해서 수술로 꺼내 주고 싶었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소설가

그나마 오늘은 老木의 활기찬 생명력을 보았다. 버슬거리는 살점덩이가 뭉개지면 뭉개지는 대로 세월에 맡기지 않고 새로운 생명 줄을 형성해서 땅으로 뿌리박고 둥지로 연결해서 혈맥을 잇는 핏줄이 되고 튼튼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쓰다듬어도 보았다. 지난해보다 더 듬직하게 자란 건강을 보았다. 역시 노거수의 노하우다. 젊은 뿌리를 어루만지며 이제는 슬픈 천년이 아니라 대접받는 새 천년을 누리소서!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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