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은지 문화부장

지난 2018년 여름, 서점에 들러 캠핑장에 들고 갈 책을 고르던 중 '소설잡지 악스트(Axt')가 눈에 띄었다. 소설잡지의 인트로는 언론인 권석천의 '낯선 나와 마주치는 서늘한 순간'이란 글이 박혀 있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있는 고사인쿤드 등반을 하면서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셰르파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쓴 글이었다. 단숨에 읽혔고 가슴에 남았다.

올해 4월 서울 언론연수에서 그를 만났다. 언론사를 떠나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더 이상 글감옥에 갇히지 않음에 홀가분해 보였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역사적 순간에 서 있던 명칼럼니스트의 시각과 기자시절 경험을 전했다. 한편의 칼럼을 8시간씩 공들여 쓰고 7~8번씩 고치기까지의 고충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강의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그가 책 제목으로도 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었다.

'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느냐?, 왜 세월호에 올랐느냐?, 그 위험한 장소에 왜 갔느냐? 이 물음들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가해자의 책임을 피해자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음모다. 피해자는 죄가 없다' - (아무도 미끼를 물지 않았다 中)

최근 공공기관 공모사업에 떨어진 분의 하소연을 듣게 됐다. 탈락사실 보다 공모사업 담당자의 태도에 더 언짢아 했다. 눈을 부릅뜨고 팔을 겉어붙이며 또박또박 설명하는 태도가 '예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담당자에게 같은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는 매번 탈락한 팀들의 항의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감정노동이 버거웠음을 고백했다. 막무가내로 항의했던 그들의 '예의없음'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이 원하는 톤의 예의를 갖출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몇달 전엔 50대 공무원도 만났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기관장의 갑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입의 혀처럼 굴어주길 바라는 기관장의 '예의에 대한 바람'을 버거워 했다. 누구에게 미움살 일도, 원망 들을 일도 없이 후배들 결혼식 주례까지 서 주며 나름 괜찮게 살아왔다고 자부한 30여년의 공직생활에서 최근처럼 괴로운 적은 처음이라며 종종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EBS에서 방영된 다큐 '어린人권'에서는 어른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출연했다.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벽돌로 내려친 엄마, 남들이 볼 때만 병적으로 친절했던 부모에게선 '사람에 대한 예의'는 없었다.

즉석연설을 하기위해 어린아이를 밀어내고 단상에 올라선 유명 정치인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박은지 문화부장
박은지 문화부장

올해 3월 대선을 거쳐 6월 지방선거까지 마무리됐다. 새로운 리더의 탄생이자 진정한 지역일꾼의 시간이 왔다. 그들이 만들어 갈 4~5년의 시간 속엔 '사람에 대한 예의'가 도매금으로 취급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조직과 국가에 대한 예의를 차려가며 사람에 대해 건너뛰었던 시대를 뒤로하고 시대정신이 된 '사람에 대한 예의'를 다시 주문해본다. 그것은 또한 '세대차원의 윤리'라는 권석천씨의 글을 굳이 빌려가면서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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