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뱀이 개구리 한 마리를 물고 사람들의 산책길을 구불구불 가로질러 간다. 산책을 즐기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웅성웅성 모여든다. 어떤 이들은 '끼약~!'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어머, 저걸 어쩌나, 어쩌나' 발을 구르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돌을 들어 뱀을 향해 던지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개구리를 입에 문 뱀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의기양양 유유히 숲속으로 사라진다.

상황은 종료되고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나온 사람들은 가던 길을 재촉한다. 가면서 제각각 한마디씩을 한다. '뱀은 언제나 징그럽고 섬뜩해, 더구나 오늘 저 모습 좀 봐 끔찍하지?', '저 개구리 불쌍해 어쩌지',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저 뱀은 독사 종류는 아니고 밀뱀이야, 독 없는 뱀이지...'

독이 없는 밀뱀이란 소리에 조금 안심을 하며 숲속으로 사라진 개구리와 뱀을 생각해 본다.

언뜻 보기에 뱀도 개구리도 모두 성체(成體)는 아닌 듯했다. 입에 물린 개구리도 새끼인 듯해 보였고, 개구리 사냥에 성공한 뱀도 아주 큰 뱀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어린 뱀은 어미에게서 배운 대로 사냥을 하고 첫 제물이 된 작은 개구리를 입에 물고 자랑스럽게 우쭐거리며 길거리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꼭 그런 모습이었다. 몸통의 절반을 꼿꼿이 세우고 사람들의 비난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꼴이라니.... 귀엽기까지 하다. 뱀의 입에 물린 새끼개구리가 불쌍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생태계 질서의 한 부분이니 마음 아파하지 않기로 한다.

다윈의 진화론이 떠오른다. 생물체는 그 구조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해 가는데 진화 과정에서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개체가 선택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생물체들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과정에 모든 생명체는 우열이 없다'라고 다윈은 말한다. 약한 것이 강한 것보다 열등하며, 강자가 약자를 짓밟아도 좋다는 뜻은 다윈의 이론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생물체들이 진화하는 과정 속에서 약한 것은 강한 것의 먹이가 되고, 환경에 잘 적응한 자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사실 이 말은 다윈의 말이 아니라 다윈과 동시대를 살았던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스펜서의 말이다. 당시 스펜서는 "생명체의 진화론"을 인간의 사회발달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끌어들였다. 즉, 생물체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했듯이 사회도 단순한 구조에서 복잡한 구조로 진화할 것으로 본 것이다. 쥐가 고양이의 먹이가 되고, 개구리가 뱀의 먹이가 되듯이 단순하고 약한 동물은 복잡하고 힘센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처럼 사회적 약자는 힘과 권력을 가진 이에게 수탈당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펼쳤고, 그 압축된 말이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조리와 불평등의 근원은 이 두 마디로 평정되었다.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은 애초에 약육강식과 적자생존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오히려 다윈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속의 경쟁보다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존의 원리와 다양하게 자연에 적응하며 서로 돕고 공생하는 쪽을 선택하였다. 오로지 타인을 짓밟아야만 살 수 있다는 잔혹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는 생태계에 대한 모독일지도 모른다. 인간들의 사회화 과정에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의 이론을 꿰어맞추었던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강하게 반기를 들고 싶다. 뱀이 개구리보다 우수해서도, 개구리가 뱀보다 열등한 것도 아님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뱀이 개구리를 입에 물고 가는 모습을 끔찍하다고 여기며 돌을 던지는 모습,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스펜서의 억지춘양 논리에 길들여진 우리 인간들의 심각한 오류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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