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추진력 탁월… 차관급 세번 역임한 '행정의 달인'

◇행정전문가 최민호

대전에서 태어난 엘리트 공무원 최민호(65)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건 스물네 살 되던 해, 제24회 행정고시 합격과 함께 시작됐다. 주로 행정안전부에서 근무하면서 행정 전문성을 담금질한 덕분에 '행정의 달인'이라 불릴 정도로 기획력과 업무 추진 능력이 탁월했다. 해병대 장교 출신답게 리더십과 대인관계가 좋고 타고난 달변에 예술·문화적 소양까지 갖추고 있던 그였다.

그의 이러한 자산은 업무 추진에 활용되면서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성과를 줄줄이 양산했다. 충남도 행정부지사로 재임하던 2002년 안면도국제꽃박람회 운영본부장을 맡아 과업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도 그가 갖추고 있던 넉넉한 소양이 바탕이 됐다. 전문가들마저 염분 때문에 개화가 안될 것이라며 난색을 표했지만 철저한 준비와 특유의 뚝심을 발휘해 예상을 깨고 관람객 163만명에 임대사업 수익을 합쳐 221억원의 흑자를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뿐만아니라 충남도 정책관리관으로 근무하던 1996년, 당시 심대평 지사에게 3군본부가 위치한 계룡대의 특성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군(軍)문화엑스포를 제안했다. 그의 아이디어 덕에 독창적인 주제의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로 발전했으며 현재는 국제 행사 승인까지 받게 됐다.

행정안전부로 복귀해 인사실장,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직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뒤 2011년 5월 '직업공무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차관급 직위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이하 행복청장)에 임명되면서 세종시와의 인연은 견고해졌다.

행복청장 재직 시 그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조정신을 계승하고 세종시를 한국적인 품격을 더한 명품도시로 만들기 위해 도시 내 공공시설 명칭을 순우리말로 제정하도록 이끌었다. 한글의 우수성을 활용해 순우리말 이름으로 명명된 도시를 만들어 차별화된 도시를 계획했다. 세종시의 학교와 도로, 다리, 동(洞) 이름 등이 우리말로 지어진 것은 최 당선인의 아이디어 결과물이다.

최 당선인은 차관급 공무원을 세 자리나 거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행안부 소청심사위원장, 행복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 화려한 족적이 그러한 이력을 뒷받침한다. 그는 공직에 있으면서도 배움을 끈을 놓지 않은 학구파다. 외국어대 법학과 졸업 후 연세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일본 도쿄대에서 법학·정치학 석사, 단국대에서 행정학 박사를 취득하는 등 학문적 전문성과 국제적인 안목을 쉼 없이 키워왔다.

◇정치인 최민호
 

유세차에 올라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최민호 세종시장 당선인
유세차에 올라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최민호 세종시장 당선인

최민호 당선인이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설렘이다. 행복청장 임명을 받고 부임했는데 2300만평의 광활한 부지에 행정수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걱정이 클 법도 했지만 외려 설레임이 더 컸다. 제대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의욕과 열정이 넘쳐났다.

그러한 기대를 안고 2012년 세종시 초대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시장으로서 세종시 건설이라는 보다 큰 꿈을 꾼 것이다.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은 후 아내와 함께 200여개 이상의 관내 노인정을 세 번 정도 방문하는 등 죽을 힘을 다해 뛰었지만 정치 신인의 벽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자유선진당 현직 연기군수였던 유한식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공천을 받은 이춘희 초대 행복청장에게 밀려 3위에 그친 채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하지만 낙선은 또 다른 시작이 원동력이 됐다. 고향은 대전이지만 세종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생각으로 세종시 연동면에 한옥을 구입해 둥지를 텄다. 2015년 정치적 멘토인 고(故) 이완구 총리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됐으나 이른바 '성완종 사건'으로 총리가 물러나면서 2개월 만에 동반 사퇴를 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로는 아예 정치와는 담을 쌓게 됐다. 범인(凡人)으로 돌아간 최민호는 가족과 함께 여행도 가고 손주들을 위한 동화책을 써가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에 충실하며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후학 양성을 요청하는 부름이 빗발쳐 대학 강단에도 섰다.

그랬던 그를 정치계로 불러들인 것은 2019년 조국사태다. '내로남불'에 '공정과 상식'이 무너져 내리는 나라 꼴을 보면서 정치적 울분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마음과 발이 움직이는 대로 찾아간 곳은 서울 '광화문'이었다. '양지만 찾아다니는 보수진영 정치인들이 참 비겁하다'는 아내의 말에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비겁한 최민호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아내에게 정치재개 의사를 비쳤다. 뜻밖에도 극구 반대하고 말릴줄 알았던 아내는 도리어 '이왕 할거면 제대로 하라'며 서울에 사는 큰 딸과 미국 MIT대학 교수로 있는 아들에게 '다들 아빠를 응원하라'며 적극적인 후원자로 나섰다. 부인 전광희씨와 슬하의 1남1녀가 최고의 후원자가 돼 준 셈이다.

그러한 응원에 힘입어 2021년 국민의힘 세종시갑선거구 당협위원장을 맡으면서 사실상 정치에 복귀한 그는 같은 해 7월 세종시당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세종에서 정치적 입지를 굳힌다. 그리고 국민의힘 정책위 부위원장과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 등 정치적 직함을 갖게 되면서 정치적인 지평을 한뼘씩 차근차근 넓혀나갔다.

특히 지난 대통령선거에서는 세종시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아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하기 위해 밤낮없이 발품을 팔았다. 어찌보면 2012년 낙선 후 10년만에 세종시장에 재도전해 승리한 원동력은 그를 믿고 응원해 준 가족은 물론 그의 뚝심과 열정, 추진력을 믿고 '세종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을 바꿔야 한다'는 그의 요청에 응답해 준 시민들의 힘이 가장 컸다고 믿는 최민호 당선인.

"저에게 세종특별자치시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겨 주신 것은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라는 준엄한 명령으로 받아들이습니다.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더 낮은 자세로 더 겸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시민을 바라보겠습니다. 세종시민의 위대한 선택에 거듭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보수의 사지(死地) 세종'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나와도 민주당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던 냉소를 딛고 일어선 최민호 당선인은 "앞으로 오직 시민만을 바라보고 시민만 생각하며 시정을 펼치겠다"고 다짐한다.

 

 

◇최민호 세종시장 당선인은.

- 충남 대전(현 대전시) 출생
- 서울 보성고·한국외국어대·연세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 도쿄대학 대학원 정치학·법학 석사, 단국대 행정학 박사
- 24회 행정고시 합격
- 행정자치부 지방분권추진기획단장, 충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안전부 인사실장·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국민의힘 세종시당 위원장,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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