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 소음·공보물 쓰레기… 자원·혈세 낭비 여전

[중부매일 나인문 기자]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가 오가는 차량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선거운동원들은 피켓을 들고 율동에 맞춰 손을 흔드는 구시대적 선거운동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 이러한 진풍경을 바꾸지 않는 한, 정치 냉소증이 심화되는 것은 물론, 선거운동의 폐단을 알면서도 바꾸지 못하는데 대한 정치 혐오증을 떨쳐낼 수 없다는 지적에 기인한다.

특히 후보자의 정치철학이나 이념, 살아온 이력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교차로나 유권자가 많이 밀집하는 광장 등에서 율동에 맞춰 춤을 추면서 피켓을 흔드는 것을 보고 투표하는 유권자는 없다는 지적과도 궤를 같이 한다.

1948년 대한민국 선거가 시작된 이후 70년이 넘는 기간동안 선거제도가 다양한 부침(浮沈)을 겪어 왔지만, 아직까지도 지역의 일꾼을 뽑는 선거가 현수막과 피켓, 선거운동원의 손짓과 몸짓으로 표심을 잡겠다는 시대에 동떨어진 선거문화가 바뀌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 가정에 발송되는 선거공보물 역시 봉투조차 뜯지 않은 채 버려지는 게 부지기수라는 점에서 첨단 IT(정보통신) 시대에 걸맞는 선거제도 개혁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실제, 지난 3월 대통령 선거 때 제작된 선거공보물은 총 4억부에 이른다. 책자형 선거공보물이 2억9천만부, 전단형 선거공보물이 1억850만부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시·도지사, 교육감, 자치구·시·군의 장, 시·도의원, 자치구·시·군의원을 뽑기 위한 공보물 5억8천만부가 제작됐다. 모두 모으면 29㎢로, 여의도 면적 10배 크기다. 선거공보를 한 줄로 이으면 15만6천460㎞, 지구를 3바퀴 돌 수 있는 길이다.

이번 선거에 쓰인 현수막도 총 12만8천여장에 달한다. 후보자나 각 정당 선거사무소 외벽에 내건 현수막이나 투표를 독려하는 현수막을 제외한 것만 그러하다. 10m 길이의 선거운동용 현수막을 한 줄로 이으면 1281㎞에 달한다.

또 1인당 7장(세종시 4장, 제주도 5장)을 받았던 이번 선거에서는 약 3억장의 투표용지가 쓰였다. 이를 전부 쌓으면(100장 기준 1㎝) 에베레스트산 3.3배에 달하고. 한 줄로 이으면 5만4㎞다. 선거벽보는 약 79만부로 잠실 야구장의 6배에 이르는 면적이 사용됐다.

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선거벽보, 선거공보물 등으로 쓰인 종이량은 총 1만2천853t. 종이 1t을 생산할 때 30년 된 나무 17그루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지방선거를 위해 30년산 나무 21만여 그루가 쓰인 셈이다. 웬만한 식물원 하나가 통째로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 규모다.

문제는 코팅된 종이 공보물은 재활용이 불가능하고, 폐 현수막은 일부 마대나 에코백 등으로 재활용될 뿐 대부분 소각 처리된다는 점이다. 사실상 2주짜리 일회용 폐기물이 다량으로 양산된 셈이다.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한국공공행정학회 회장)는 "일당을 주고 선거운동원을 동원해 교차로 등지에서 피켓을 들고 선거운동을 하거나 엄청난 선거공보물을 만들어 가가호호 뿌리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선거문화"라며 "그러한 비용까지 법정으로 보전해 주는 것은 엄청난 예산낭비이자, 후진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13일의 공식선거운동기간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음악을 틀고 오가는 시민들에게 확성기로 유세를 하는 것도 유권자들에게는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선거공해"라며 "예비후보로 등록해야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개선해 1년내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미국처럼 유권자와의 접점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2000년 선거부정감시단제도가 도입되고, 2006년 매니페스토 정책선거가 도입돼 부정·불법 선거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돼 있지만, 시대가 변해도 후진적 선거문화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해외 선진사례 도입 등 선거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시·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제도개선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인문/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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