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현자 수필가

낯선 그와 한 몸이 되어 밤을 지새웠다. 흥분되어 가슴은 뛰고 몸에 열이 한껏 오르니 잠을 푹 잘 리가 만무하다. 늘 옆에 있던 남편을 거실로 내보내고 그와 지낸 밤이었지만, 뒤척이다 새벽녘 설 잠이 깬 것은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아뿔사! 아침준비를 위해 방문을 열고 주방으로 나가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축축 처지는데 그가 내게 왔다는 이유로 가족은 나를 찾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방안에 밀어 놓고는, 때맞춰 먹을거리를 챙겨 주고 빨랫감을 내어놓아도 군소리 없이 받아주니, 집안일에서 벗어났던 적이 지나온 날 동안 얼마나 있었던가. 그와의 동거를 말없이 용인((容忍)한다.

직장인으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딸로 참으로 많은 역할을 해야 했다. 그 역할에 충실하려고 물오리처럼 물속에서는 쉼 없는 물질을 하지만 물위에서 보여 질 땐 편안하고 당당하게 보이려고 애를 쓰며 살아 온 것 같다.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안방에서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이 멈춘 채 혼자 있다. 비록 약으로 얼마간의 증세를 달래기는 하지만, 먹는 것이나 잠자는 것에 구애가 없으니 바삐 살아온 삶에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덤이 얹혀진 것 같다.

봄 햇살이 기웃거리는 창밖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지난 설에 다녀오고 못 뵌 시골집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마을에 유행병인 볼거리가 돌았는데 몇몇 아이들은 퉁퉁 부은 턱에 까만 잉크 칠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간요법이라기보다는 접촉을 막기 위한 동네 어른들의 지혜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항아리손님'이 왔다고 했다. 밖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부모님의 말씀을 어기고 아이들과 어울리다가 열이 오르고 턱 부위가 부어올랐다. 나도 어김없이 그날부터 턱에 까만 칠을 한 채로 여러 형제 중에 어머니 옆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소복한 머리에 밴 연기 냄새에 까칠한 손으로 자꾸 이마를 짚어주시던 손길은 다정했고 몸이 뜨거워지면 아득하게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데, 어느새 작은 손에 잡혀 있는 어머니의 젖무덤은 참 아늑하고 포근했다. 몸이 아플 때 차지할 수 있었던 푸근한 어머니의 품. 투박하고 온기 어린 사랑이 새삼 그리워진다.

안방 큰 창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햇살이 오늘은 '어머니'보다는 '엄마'라는 친근감이 되어 나른한 몸을 다독여 주는 것 같다.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니 미운 사람은 별로 없고 고마운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자연스레 스며들어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이현자 수필가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날 것 같은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동료와의 웃음, 지인들과 나누는 담소, 가족과 식탁에 둘러 앉아 먹는 저녁밥이 주는 소소한 일상이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당연한 일이어서 소중함을 모르고 겸손하지 못했던 적을 떠올려 본다. 사람 관계에서, 아니면 내 자신에게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시금 돌아보라고 이렇듯 낯선 이와 7일간의 동거를 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밤도 그와 동침하기 위해 침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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