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중국 전국(戰國)시대 한(韓)나라에 추상같은 형벌 집행이 치국의 근본이라고 주장한 사상가가 있었다. 법가(法家) 사상을 완성한 한비(韓非:기원전 2세기)다. 순자(荀子)의 문하생인 그는 순자의 성악설을 계승 발전시켰다. 한비는 '인간은 이익을 탐하는 악(惡)의 굴레를 쓰고 있다. 악을 법으로 엄격하게 제압해야 인간과 국가가 온전하다.'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는 당시 이웃 진(秦)나라의 위협으로 백척간두에 처해 있었다. 그는 우국충정에 '법가'를 치국과 부국강병의 정치사상으로 채택할 것을 왕께 건의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던 중 그의 저술 <한비자:韓非子> 등을 읽어본 진시황이 한비를 등용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방법은 한나라를 공격해 한비를 모셔서 오는 것. 이를 눈치챈 한나라는 망국을 막기 위해 한비를 즉각 진나라에 넘겨줬다. 한나라는 위기를 모면했다. 진나라는 한비의 법치 사상을 받아들였다. 한비는 최초 중국 통일의 수훈 갑이 되었다.

한비의 법치 국가 철학은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은 이해타산적인 데다 악하다. 정이 있다 해도 무력하다. 인간관계는 이해관계다. 사람의 우환은 타인의 믿음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군주는 덕이 아닌 엄격한 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일벌백계(一罰百戒)와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이 절대적이다. 최선의 치국을 위해서는 인정을 베풀어서도, 사정을 봐줘서도 안 된다. 법 집행에는 인정사정(人情事情)없어야 함이 철칙이다. 때로는 육친의 정까지 무시해야 한다. 법 집행이 무자비할 정도로 엄격해야 한다. 심지어 군주는 공론(公論)에도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치국의 최우선이자 최선의 기준은 엄격한 법 집행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한비의 유령이 나타났다. 그것도 군단으로 말이다. 한비의 법가가 법치주의로 바꿔 부활했다. 이 유령군단을 지휘하는 통솔자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정부 요직에 유령군단을 출현시켰다. 이때가 바로 대통령실 조직에 검사와 검찰 출신들을 내정 발표한 5월 5일이다. 윤 대통령은 검사 출신 기용에 대한 야당 등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뒤이어 검사 출신 7명을 장 차관급에, 검사 출신 1명을 금융감독원장에 각각 임명했다.

명실공히 검찰공화국의 입지를 굳힌 셈이다.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에서부터 이미 그의 검찰공화국 설립(?)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대통령 당선은 이의 현실화를 가속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 역시 검사 출신이다. 그것도 퇴임 3개월 만에 대선에 나서 통치자가 된 전직 검찰총수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명시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다.'로 둔갑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법을 위반하면, '법대로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발로다.

그런 데다 윤 대통령은 법을 자주 입에 올려 검찰공화국 입지를 더욱 공고화하는 느낌이다. 윤 대통령은 출근길에서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한 질문에 "그게 법치 국가 아니겠는가." "(검찰 출신 기용), 글쎄 뭐. 필요하면 또 해야죠."라고 답했다. 문 전 대통령 사저 주위의 보수단체 시위에 대해서는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다 '법'에 따라 되지 않겠느냐."고 기자들의 물음에 답했다. 화물연대 전면 무기한 총파업과 관련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법이면 '만사 오케이(萬事 OK)'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한비의 법가사상은 당시 상황을 반영한다. 전국시대는 말 그대로 전쟁이 일상적이고, 많은 백성이 몽매하고, 사회구조의 결속력 역시 취약하다. 남의 나라를 공격해 합병하거나 공격받아 왕조가 멸망하기 일쑤인 시대다. 국가 안위를 위해서는 유가 사상이 부적합하다. 강력한 법치에 의한 일사불란의 통치력이 필수적이다. 이 상황에 비춰보면 법가가 진나라의 법치국가 철학이 되었음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검사 출신 등을 전면 배치하고 법의 잣대를 엄중하게 들이대며 치국할 정도는 아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한 상황도 아니고, 국민이 몽매하지도 않고, 사회를 뒤흔들 만큼 범죄가 횡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법(法)은 '물 수(水)'와 '갈 거(去)'의 합성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감이 당연한 이치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회의문자다.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 대거 기용과 '법대로 엄정 대응'은 법을 통치의 근본으로 놓고 국민을 겁박(劫迫)하는 게 아닐까? 굳이 그러하지 않아도 치국할 수 있고 법은 지켜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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