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과 유관순, 화해·통일의 아이콘
왕건과 유관순, 화해·통일의 아이콘
  • 중부매일
  • 승인 2022.06.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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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지난 3일 천안박물관에서 '충남의 고려시대 역사·문화유산' 학술대회가 열렸다. 천안시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등이 주최한 행사였다. 참석자들은 천안은 태조 왕건이 후삼국통일을 위한 군사거점으로 만든 도시이니. 왕건을 도시브랜드로 삼는 게 마땅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지만 "새 역사인물을 도시 상징으로 내세우기 앞서, 기존에 널리 알려진 역사인물과의 공통분모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천안의 전국적 역사인물은 역시 유관순이다. 천안 아우내만세시위를 주도하며 부모를 시위현장에서 잃었고, 감옥에선 옥중시위를 이끌다 모진 고문으로 18세에 순국했다. 고교·대학생 통틀어 최고형인 징역 3년을 받았고, 서대문감옥에서 죽음을 맞은 유일한 학생이었다.

왕건과 유관순, 언뜻 보기에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두 인물은 한 민족의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후삼국시대는 민생 안정을 위해 분열의 종식, 즉 통일이 급선무였다. 유관순이 살았던 일제강점기는 식민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독립이 최대 현안이었다. 통일과 독립이라는 민족적 최대 과제 앞에서 왕건과 유관순은 모든 열정을 바친 역사 인물이었다.

왕건은 혼란스러운 후삼국 상황에서 천안(天安), 즉 천하가 평안해져야 한다는 통일의지를 도시이름에 담았다. 이 천안신도시를 발판으로 후백제를 물리치고 후삼국 통일을 달성했다. 왕건은 천안 이외 "성인이 사는 산" 성거산(聖居山), "사직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는 이유로 직산(稷山) 고을이름을 천안에 남겼다.

이런 근거로 필자는 고려 수도 개성 이외 왕건과 가장 가까운 도시는 천안임을 주장하며, 고려 건국 1100주년인 2018년 천안과 개성시의 공동기념사업 개최를 기원했다 ( '태조 왕건의 천안 역사문화콘텐츠화 시론' '한국중세사연구'48, 2017). 남북화합의 계기를 역사 친연성에서 찾자는 생각이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유관순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2019년, 건국훈장 1등급인 대한국민장을 추가로 서훈 받았다. "광복이후 국민통합과 애국심 함양에 기여했다"는 공로에서다. 실제로 광복 직후인 1947년 2월 유관순 순국 사실이 발굴되면서, 곧바로 유관순 선양운동이 거족적으로 일어났다. 기념비 제막, 영화 제작, 전기 출판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영화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필자는 유관순 선양운동이 좌우익 극한 대결의 남북 분단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지사들 바람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 '유관순 발굴 과정의 검토' '백산학보'113, 2019). 천안 병천의 기념비 제막식에 보낸 김구·이시영 등 독립지사들 추도사는 모두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작금의 좌우 대립 상황으로 유관순 등 순국선열 뵙기가 부끄럽다. 민족통합에 남은 생을 바칠 걸 맹세한다. 선열들이여 도와주소서."

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천안시는 '태조왕건공원' 조성을 앞두고 있다. 3년 전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왕건과 유관순은 천안의 역사인물 도시브랜드로 손색이 없다.

왕건은 지방호족 포용과 화합에 힘쓰면서 천안을 군사거점으로 민족통일을 일궈냈다. 해방직후 독립지사들은 유관순을 통해 온 민족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집단기억을 불러내 민족통합을 이루려 했다. 왕건과 유관순은 화합과 통합의 아이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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