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석민 충북지방법무사회장

도가니는 청각장애인을 성폭행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2011년 영화다. 영화에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언어(손으로, 몸짓으로) 성폭행을 설명했다. 그러나 청주 여중생 사건은 두 아이가 재판을 할 때에는 피해자로서 말을 할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한 길은 두 아이의 생존 당시 기록을 친구, 선후배들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모아 재판부에 설명하는 길 외에 없었다. 목소리가 아닌 기록만으로도 두 아이의 비극을 접한 재판장도 울먹이며 판결을 읽을 정도로 이 사건 기록은 참담함의 연속이다.

아름은 항소심 판결문에 나와 있듯이 '아빠가 성폭행 했어요'라고 말을 했다. 이와 반대되는 아름의 말들은 '믿을 수 없고, 진실을 숨기기 위한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며(판결문 17쪽), 피고인 A씨가 아름으로 하여금 진술을 번복하게 하고, 아름을 피고인의 방어수단으로 이용한 행위(판결문 34쪽)'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아름이 살아 있을 때는 국가와 지자체 어느 누구도 이 아이가 가해자와 분리를 거절한다고 해석했다.

2021년 2월 26일 정신과에서 "아빠가 성폭행을 했어요"라고 말한 다음 날(공휴일) "우리 집은 안전합니다. 제보자 성함 좀 알 수 있을까요?" 경찰에게 말을 했고, 2월 27일 자해를 하고 3월 11일 손목에 붕대를 감고 학교에서 조사를 받으며 "성폭행 당하지 않았어요. 꿈을 꾼 거예요!"고 말을 할 때 어른들은 이 아이가 현재 중대한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 아이가 싫다고 했다며 우리 사회의 면책을 주장했고, 잊지 말자고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사건을 축소하려 노력을 했다.

처음 이 사건을 접할 때 피해 아동의 눈높이에서 아이가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주 여중생 항소심을 끝마치고 난 결론은 어른들이 귀를 막고 있었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성폭행 당했고, 지금 매우 중대한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저를 구해 주세요!"라고 아름은 분명히 말을 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우리 집은 안전하다'는 아름의 말만 들었다. 내면을 읽지 못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공유(강인호 역)는 시위를 하면서 "이 아이는 들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아이입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입니다. 꼭 기억해 주십시요!" 절규한다. 청주여중생 아름은 노땡땡(서류상 노○○)이라고 법정에서 불렸다. 한 아이를 물건처럼 '노땡땡'이라고 부르는 법정을 지켜보다 항소심 재판장이 '노 양'이라고 불러 주었을 때 한 소녀를 '노땡땡'이라고 불러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법정이 아님에 감사했다.

김석민 충북법무사회 회장<br>
김석민 충북법무사회 회장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는 노래가 들리자 피해자 아이가 손을 드는 모습은 영화 도가니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 사건에서 미소와 아름의 기록을 보면 볼수록 계속 상처를 받았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길을 혼자 걷던 때도 있었다. 청주 여중생 사건을 알면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슬픔이 무성한 가시나무 같은 사건이다. 또한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가시나무숲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미소와 아름 두 명의 아이가 쉴 곳이 없었던 가시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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