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제천·단양주재 부국장 

전국 유명 관광지로 이름난 충북 단양.

그 곳에 한강 2대 지류 가운데 하나인 남한강에 외로이 떠 있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무심코 보면 오랜 세월 속에 쌓인 퇴적물 같아 보이지만, 이 섬을 단양 주민들은 '기적의 섬'이라 부르고 그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전설같은 이야기는 구단양이 수몰되고 충주댐이 건설되기 전인 49년 전 시간으로 태엽을 돌린다.

1972년 태풍 '베티'가 한반도를 강타한다.

8월 19일 오후 3시쯤 장대 같은 빗줄기가 무섭게 퍼부으면서 44가구 250여 명이 모여 살던 시루섬 전체는 물바다가 됐다.

미처 피신하지 못한 주민 대다수는 높이 7m, 지름 4m의 물탱크 위로 몸을 피한 뒤 물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서로 팔짱을 끼고 14시간을 버텨냈다.

물탱크의 크기를 환산하면 약 16㎡에 5평 정도로 당시 운행되던 시내버스와 비슷한 크기였다.

그 협소하고 아슬아슬한 공간에서 엄습하는 공포감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마을 주민들은 어두운 밤에 겹겹이 스크람을 짜고 발은 물탱크 위에 있고 떠내려오는 부유물의 공격과 물의 유속을 밤새 참아냈다.

안타깝게도 이제 막 돌을 지난 한 아기가 사람들 틈속에서 압박을 견디지 못해 숨을 거뒀고, 아기 엄마는 주민들이 동요할까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반나절도 더 지난 14시간 뒤 헬기가 와서 구조하는 과정에서야 아기의 시신을 확인하고, 사람들은 237명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루섬의 기적과 희생의 전설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도리에 내살 파다가 신단양을 건설했네 겨레의 젖줄속에 담겨있는 증도리야! 너라도 내가 숲속에 영원히 남아 주려무나"

중도리 주민들이 당시 단양역 인근에 세운 마을 자랑비의 한 구절이다.

단양인의 새로운 터전이자 한해 천만 관광객이 오고 가는 지금의 단양은 시루섬의 흙과 나무 그 모든 것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뼈와 살을 태운 시루섬은 앙상해진 황무지로 그렇게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다.

현재 단양군은 19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단양역 앞 5번 국도와 시루섬을 연결하는 현수교를 만드는 '시루섬 관광 명소화'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다채로운 스토리텔링과 관광 명소화 작업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앞서 시루섬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조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날의 이야기를 한의 내면적 승화로 담아 모든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전달되어 함께 즐기는 시공간이 되기를 말이다.

그러기에 신단양 건설의 뼈와 살이 되어준 시루섬과 마을주민의 희생에 위로와 감사를 전하는 시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가령 희망 문화재를 만들어 잔잔한 통기타 음악 선율과 함께 그날의 감동과 슬픔을 함께 느낀다면 이 또한 얼마나 좋을까?

정봉길 제천·단양주재 부국장 <br>
정봉길 제천·단양주재 부국장 

당시 주민들이나 남은 가족들에게 '희망 단양 훈장'을 만들어 그들의 가슴에 달아주면 당사자에게 자긍심, 다른 이에겐 귀감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코로나에 지치고 선거로 인해 갈라진 단양 민심을 '시루섬 감동'이라는 물결로 지역이 하나 되고, 전국적인 명소로 거듭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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