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이른 새벽 수많은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잠이 깨인다. 생태계가 파괴돼 피난 온 새들은 누구를 탓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아침 이슬에 세수를 한 앙증맞게 매달린 방울토마토와 왕 토마토는 하루가 다르게 굵어가고 있다. 가느다란 줄을 타고 올라가는 울타리 콩의 묘기는 신비하다. 오이들이 쑥쑥 자라고, 노오란 꽃을 매달고 벌과 나비를 부르는 호박꽃도 예쁘다, 앞마당 화단에는 수박과 참외도 있다. 지주 대를 세우고 활대를 꽃아 터널도 만들었다. 거미줄 늘이듯 줄을 매고 넝쿨 식물을 기르는 재미에 빠져 지낸다.

넓은 터전에 자고나면 할 일이 태산 같은 농부의 고충을 경험했다. 테크노 단지 조성으로 터전이 사라져 버리고, 난 작은 뜰에 소꿉놀이 하듯 화분에 이것저것을 화초 가꾸듯 기른다.

직사각형 화분에 상추 다섯 포기가 주는 행복, 고추 열 포기를 종류별로 심었다. 찌개용 청양고추, 싱싱한 오이 맛의 아삭이 고추와 푸성귀를 가꾼다. 밥상에 오르는 고추와 오이, 꼬 냥의 귀걸이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더니 파란 완두콩밥을 먹는다.

새벽을 기다리게 만드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고 손길로 만들어진 식재료가 사랑스럽다. 설거지를 하다 밥알이 있으면 깨끗하게 보관 했다가 새들의 먹이로 주기 시작 했더니 산 까치부터 이름도 알수 없는 새들이 모여든다.

검은 등 뻐꾸기는 네 박자로 창공을 가르며 요상한 괴성을 지르는가 하면 뻐꾸기가 울고 꾀꼬리가 노래를 부른다.

생태 공원에 숲이 우거지고, 기차길옆 문암 마을로 피난 온 새와 동물이 넘친다. 달리는 기차에 희생당한 고라니의 죽음을 보고 심장이 콩닥 거리는 날도 있다.

벌거숭이로 바라보이는 산천엔 머지않아 고층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전국에서 부동산 붐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 올 것이고 멋지고 근사한 신도시가 창출 될 희망이 꿈틀거린다.

한 평생 삽과 괭이를 들고 땅을 일구며 살아온 원주민들은 지금 우리 마을에 정착한 새들처럼 객지로 떠나가고 나도 언젠가는 어디로 쫓겨 갈지 모른다.

음양의 이치를 벗어나 살수 없는 것이 인생길이다.

아름답다. 행복하다. 희망이 넘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세월은 흐르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 식물들은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자기 본분에 충실 할 따름이다.

보리수와 앵두, 살구가 많이 달렸다, 해마다 따서 효소를 담았는데 올해는 익기도 전에 새들의 먹이로 사라져 버렸다.

앞마당에 호두나무와 감나무가 있다. 호두는 익기도 전에 청설모가 다 따가겠지만 튼실하게 영글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주인이 아님을 자연은 가르쳐 주고 있다. 내 것을 빼앗아 간다는 선입견을 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 또한 내 욕심이다. 함께 즐기라고 조물주께서 이 세상에 주신 선물이 아닌가.

조롱조롱 익어가는 호두를 청설모가 다 가져가도 원망하지 말자. 정작 주인인 호두나무도 가만히 있는데.

법정 스님 말씀처럼 벌레와 새들과 함께 먹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욕심이 과한 청설모 같은 얌체족도 있는 것이 이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심고 거름 주고 소독하며 드린 정성을 생각하면 내가 주인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은데 불청객의 침입을 막을 순 없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그 또한 욕심이 아닐까.

내 자녀가 내 소유물이 아니듯이 가꾸고 기르는 동안 내게 준 행복으로 만족하라 했지 않았는가.

빠알갛게 익어가는 토마토가 있고, 튼실하게 매달린 오이들이 기쁨을 주며 나비와 벌을 불러 축제를 열고 있는 호박꽃이 있으니 다행이다.

산새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청명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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