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우리 동네 근처에 높은 아파트가 줄줄줄 들어섰다. 큰길이 생기고 시내에 가서 만나던 가게들도 생겼다. 약속 때문에 몇 번 가봤지만 언제 이런 건물이 생겼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게다가 새 아파트와 거리라서 그런지 건물도 깔끔하고 거리도 깨끗하다. 새로 생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니 먼 곳에 여행을 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커피를 마시고 집에 들어온 뒤 골목길을 쓸었다. 요즘 감나무에서 감꼭지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골목에 탁자와 의자를 두 세트 꺼내 놓는다. 작년까지는 탁자 한 개와 의자 한 개이었는데 올해 지인으로부터 탁자와 의자를 하나 더 얻어왔다. 그렇게 두 세트를 나란히 놓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다.

그 사진을 보고 골목카페 같단 얘기를 많이 들었다. 사진에는 요리조리 지저분한 것이 안 들어가게 찍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쓰레기도 한 쪽에 있고, 깨진 화분, 박스 등 이런 저런 잡다한 것이 있다.

그런데 묘하게 사진만 보면 나름 그럴듯한 골목 카페 느낌이 살짝 든다. 그래서 또 골목을 잘 살펴보니 꼭 틀린 것만은 아닌 듯싶다. 엽서만한 초록 잎사귀를 매단 큰 감나무도 꽤 인상적이다. 올해는 조금 밖에 안 달렸지만 빨간 앵두도 예쁘다. 또 옆집에서 심은 머루나무 덩굴이 담을 넘어 와 대롱대롱 매단 자잘한 연둣빛 머루알도 귀엽다.

담에 착 붙은 담쟁이덩굴도, 보도블록 사이의 풀꽃도 운치를 더한다. 게다가 막힌 골목길이라 오가는 사람들도 드물고, 적당한 햇살과 그늘이 있어 좋다. 새소리도 얼마나 맑고, 불어오는 바람은 얼마나 상큼한지 모른다.

카페하면 무언가 근사한 곳을 생각했는데... 골목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느끼는 묘한 편안함이 좋다. 커피 마시다가 책 보다 눈이 침침하면 잠깐 눈을 감는다. 새소리를 들어 보기도 하고 슬쩍 지나가는 고양이 소리도 들으면 참 편안하다.

그리고 요즘 초록으로 반짝이는 골목 풍경을 보면 개운하고 맑아진다. 물론 골목 한 쪽에 카페와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있지만 감나무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살만 봐도 이상하게 그런 것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불더니 이내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졌다. 그래서 탁자와 의자 하나만 남겨 놓고 모두 집안으로 들여 놓았다.

작은 처마가 있는 곳으로 탁자와 의자를 옮겨 놓았다. 이내 비가 떨어졌다. 빗방울을 바라보며, 빗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커피는 색달랐다. 작은 처마 밑 원 테이블 근사한 골목 카페라니. 멋진 빗방울 연주와 커피의 궁합은 소소한 선물로 다가왔다.

커피를 마시다 살짝 손을 처마 밖으로 내밀었다. 빗방울이 닿는 손끝이 간지러웠다. 며칠 쉼 없이 살던 내게 빗방울은 마치 쉼표가 되어 콕콕, 찍어 주었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눈이 오면 혹여 미끄러울 까봐 빨리 쓸어야 하고, 장마 때면 골목길에 빗물이 잘 내려가나 수시로 살펴봐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다. 하지만 주택은 그만큼보다 더 받는 것도 많다.

처음 이사 올 때는 좁고 막힌 언덕길 골목이라 망설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서 더 좋다. 나만의 골목길 카페 의자에 앉아 마시는 커피. 화려하지 않지만 이런 소소한 일상이 참 좋다. 앞으로 또 누군가 탁자와 의자를 준다면 덥석 받아와야겠다.

"골목카페에 초대합니다. 커피는 공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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