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석민 충북법무사회장

두 명의 기사가 장검과 방패를 들고 싸운다. 검은 상복을 입은 마르그리트(여주인공)가 남편이 결투에서 이기길 바라며 지켜보고 있다. 강간했느냐를 두고 두 남자(남편과 가해자)가 결투를 한다. 만약 남편이 지면 마르그리트는 거짓 증언을 한 것으로 화형대에서 불타 죽어야 한다. 1386년 파리에서 벌어진 사법 결투를 모델로 한 영화 라스트듀얼(마지막 결투)의 장면이다.

이 야만의 사법 결투 이전에 재판이 있었다. 그 재판(2심)에서 가해자의 변호인들은 마르그리트에게 강간은 꿈이었다고 법정에서 말하면 마르그리트는 정조를 상실하지 않은 것이 되고, 가해자는 무죄가 된다. 서로 승자(勝者)가 되는 길이라고 강요했다. 여기서 청주 여중생 사건의 아름(의붓딸)이 연상된다. 그러나 마르그리트는 온갖 모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꿈이 아닌 강간이라고 한다. 그러자 재판부는 사법 결투를 제안한다. 조건은 만약 결투에서 지면 남편도 당신도 죽는다. 그래도 할 것이냐 반협박을 했는데 마르그리트는 강간은 강간일 뿐 꿈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 역사의 마지막 사법 결투는 서막을 열었다.

당시 사법 결투를 결정하기 이전 1심에서 가해자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의 이유가 황당하다. 당시에는 강간으로 임신을 할 수 없다고 법전에도 명시되어 있었는데 마르그르트는 강간 이후 임신을 했다. 따라서 가해자의 강간은 강간이 아니라고 선고했다. 시대가 지나 강간과 임신은 상관이 없고 그런 생각은 미신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현대의 법정에도 여전히 미신과 유령이 있다. '피해자다움'이란 미신과 '진술일관성'이라는 유령이다.

1심에서 아름의 강간이 무죄가 된 것을 보아도 '진술일관성'이라는 유령이 여전히 현대 법정에서 피해자들을 화형대에 올려 불태우는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간죄는 동전의 양면을 갖고 있다.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으면 고소인은 무고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즉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된다.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자. 강간을 당하고도 거짓말한 사람이 된다. 육체와 정신이 2번 죽는다.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청주 여중생 사건 미소는 2021년 4월 28일 증거와 증인이 없다고 친구에게 한탄을 한다. 5월 5일 미소는 아름이 성폭행 당했다는 말을 바꾸고 결국 "나만 (거짓말을 한) 장애인 되었어!"며 펑펑 울었다. 강간을 당하고도 가해자가 100일이 되도록 구속되지 않자 이제 피해자는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되어가는 처지에 이 소녀는 도대체 이게 뭐냐고 한탄과 눈물을 흘린다.

김석민 충북법무사회 회장<br>
김석민 충북법무사회 회장

마음이 가장 아픈 것은 당시 미소와 친구의 핸드폰에는 성폭행에 대한 (유족들이 기자 회견 시 발표한 증거이며 판결에서도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 결정적 증거가 있었다. 다만 아이들은 그게 결정적 증거임을 몰랐다. 문제는 그게 결정적 증거임을 아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걸 한 번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지척에 있던, 아니 피해자의 손안에 있던 그 증거를 국가는 그 아이가 죽을 때까지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미소는 유서에서 나쁜 사람은 벌받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억울해서 한(恨)이 맺혀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그 아이는 죽고 나서 100일이 되는 날 유서로 어른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 아이의 말에 대답해야 했다. 그래서 이 사건에 뛰어 들었다. 청주 여중생 사건은 형사 사건을 뛰어넘는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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