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동성 베이징대학교 제2외대 강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의 세계관으로는 주례에 나오는 구기를 예로 들 수 있다. 세상의 중심에는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국기가 있고, 이 국기를 중심으로 매 500리마다 조세와 부역의 책무를 달리하는 지역이 존재하는데, 이를 가리켜 구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영가의 난 이후, 중국인들은 멀리 인도에서 건너온 사천자 세계관을 받아들이게 된다. 양나라 승려 보창 등이 편찬한 경률이상에 따르면 염부제를 지배하는 4명의 천자가 있는데, 이들은 진나라와 인도, 대진국과 월지 천자다. 이 같은 세계관이 언제 형성됐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설이 존재하지만, 현재까지 통용되는 학설에 따르면 3세기 중엽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세계관에 따르면 세상은 중국과 인도, 로마제국, 유목제국이 다스리는 다극 체제이며, 중원의 천자는 동방 세계를 통치하는 지배자일 뿐, 전세계의 지배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천자 세계관은 현장법사가 편찬을 주도한 대당서역기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제국의 공인을 받았으며, 오랫동안 중국인들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세계관의 영향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자국은 여러 강대국 중 하나에 불과할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지배하는 하나의 패권국이 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 학계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는 하나의 패권국 지위를 놓고 2개 이상의 국가가 다투는 것을 전제로 하며,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승자독식제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베이징 지도부는 과연 미국과 투키디데스 게임을 하는 중일까? 아니면 강대국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진 다극체제로 전환하려는 것일까? 국제 사회를 향해 자신들은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중국·러시아의 안전보장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베이징의 발언만을 놓고 보면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다. 베이징은 새로운 다극체제를 꿈꾼다. 그것은 중국과 인도, 러시아와 미국이 서로를 견제하며 공존하는 세계임과 동시에 상호 세력권을 존중하는 세계질서이기도 하다. 이 같은 구상에 기초해 베이징은 타이완 진출을 시도함과 동시에 인도차이나, 중앙아시아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며, 워싱턴과 모스크바, 그리고 델리와의 이합집산을 통해 강대국 간 힘의 균형을 이루려 할 것이다.

신동성 베이징대학교 제2외대 초빙교수
신동성 베이징대학교 제2외대 초빙교수

이 같은 변화의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미·중 간 중간지대를 자처하여 분쇄지대화를 막음과 동시에 양국 간 소통과 교류에 필요한 안정적 창구를 제공함으로써 양국 모두에게 우리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이번 정부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다극체제 하에서 우리의 역할과 나아갈 길을 고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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