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필수조건이다. 이 상호작용의 매체가 다름아닌 커뮤니케이션, 곧 사람들과 대화하는 능력이다. 이는 살면서 계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다. 그런데 모든 대화에 앞서 가장 기본은 상대에게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래야 친밀감이 형성되며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의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차 커뮤니케이션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실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애서 얻는 직접적인 의미이며 제 2 커뮤니케이션은 말한 사람이 의도하지 않는 의미를 듣는 삶이 추측하는 것이다. 2차 커뮤니케이션은 화자가 말한 말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 그 말이 주는 인상이나 부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만일 A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B라는 친구의 휴가비를 대신 내주기로 했다는 말을 꺼 냈다고 하자. 비록 A가 나를 너그러운 사람으로 여기길 바라며 말을 꺼냈다해도 정작 A는 나에게 휴가비를 받아 여행을 떠나는 B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받을수 있다. 혹은 내가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친구를 뒀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이것이 제 2차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다.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의 '간극' 곧 화자가 의도하는 뜻과 청자기 '해석' 한 뜻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간극이 생기는 걸까? 따지고 보면 언어라는 것은 어떠한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거나 외부 세계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되면 감정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우리는 단어를 조합해서 그 감정을 표현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필요한 것을 말하게 된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의 격차가 생기는 이유는 본인의 경험과 정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어휘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경험을 설명하더라도 이 사람이 쓰는 말과 저 사람이 쓰는 말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동일한 언어로 완벽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명도 없다. 덧붙이자면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경험한 것이 다르고 세상과 자신의 위치를 보는 시각도 다르다. 신념도, 가치관도 제 각각이다. 커뮤니케이션의 토대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 '미래' 에 일어났으면 하는 일이다. 이들 소재는 항상 내면의 처리과정을 거치는데 바로 여기에서 사람마다 차이가 생긴다.

만약 내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옆 차선를 달리던 차가 내 앞으로 불쑥 끼어 들었다고 하자. 깜짝 놀란 나는 조수석에 앉은 사람에게 상대방 운전자에게 말할 때 나의 의식은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 말을 할 것이다. 첫째,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 둘째, 운전할 때 해야 하고 하지말아야 한다는 신념, 셋째, 이전에 운전하면서 있었던 비슷한 경험, 넷째, 하마터면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으리라 라는 짐작이나 생각 등이다. 무의식적으로 이모든 생각을 정리하고 나면 옆자리에 사람에게 이 사건에 대한 긍정적 반응으로는 '거참, 좀 조심하지' 부정적인 반응으로는 '남이야 사고가 나든 말든 안중에도 없구먼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런가하면 내가 만약 운전석이 아니라 조수석에 있었다면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이렇듯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자신이 처한 위치나 상황에 따라 표현하는 언어의 반응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래서 항상 커뮤니케이션의 간극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다 오늘도 우리는 수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하지만 원활한 소통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러기에 대화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이해는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이 기술 중 하나는 화자와 청자간의 이루어지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조금 행복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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