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석윤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여러분들에게 '쌀'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주식인 하얀 쌀밥, 모내기, 황금들녘, 쌀 관세화, FTA 등 많은 연관어가 떠오를 것이다. 적어도 필자에게 '쌀'은? 세계 R의 공포속, 유독 쌀값만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농업의 근간이며 농업인의 자부심으로 각인되어 있다. 불과 3~40여년 전만 해도 전 국민모두가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급격히 변했고 실물경제는 냉정하다. 농업이 우리경제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폭 줄어든 것처럼 '쌀'의 위상도 동반추락했다. 농업계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 한 켠이 너무나 무겁다.

필자가 어릴 적 동네어르신을 만나면 의례 인사가 "아침 드셨습니까?"였었다. 그 시절 쌀이 귀해 아침 식사를 거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밥은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문제중 하나였고 특히,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 모두의 소망이었다. 그당시 정부는 원조를 받는 가운데서도 쌀 자급을 위해 총력을 다했고 개량품종인 '통일벼'는 보릿고개를 넘어 쌀 자급 100%를 이루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56.9㎏으로 30년 전 127.7㎏과 비교하면 절반이하로 줄었다.

'나홀로족(族)'이 전체 가구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여유롭게 아침을 즐길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원하게 됐고 이런 음식문화의 변화 속, 다양한 레시피로 소비자를 공략한 것이 수입 밀가루다. 어느새 밀가루는 연간 200만 톤 정도 소비되는 반면 가공용 쌀 소비량은 40만톤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간 '쌀=밥'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소비자의 변화에 미쳐 쌀 소비처의 다변화 전략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처럼 유독 쌀만 남아돌고 스태그플레이션 속 가격이 추가하락한다면 수천억원의 세금과 쌀 재배 농업인들에 대한 대책이 어느새 국가적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쌀농사는 '풍년기근(豊年飢饉)'이라는 말이 있듯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소비는 감소하고 생산비용은 반대로 물가상승속 높아지고 있지만 쌀값은 낮아져 농업인들은 시름을 앓고 있다. 몇해 전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가 '쌀 자조금제도 도입을 위한 설문조사'를 전국 쌀 전업농회원 농가 1,2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들에게 쌀 풍년에 따른 쌀 수급불균형의 원인에 대해 질의한 바 있다. 응답자들의 89.7%는 쌀 소비감소가 쌀 수급불균형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쌀값 하락의 원인 중 하나가 쌀 소비의 감소에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모든사물에 대해 경제학적 가치(價値)를 매긴다. 가치는 의사결정의 근거이며 예측 가능성의 바탕이 된다. 그럼 우리는 '쌀'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매길까? 농업인, 정부, 일반인, 전문가 간에 주관적 가치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다. 중요한 점은 서로가 그 가치에 대해 공감을 해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쌀'의 가치는 수요-공급의 원칙에 의거 소비자가 지불코자 하는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다. 미국의 금융 경영가인 마이클 마이넬리는 그의 저서 '무엇이 가격을 결정하는가?'에서 "사람들이 정확한 가치를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싶은 사람은 그 가치를 인식시키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즉, 우리의 주식인 쌀의 가치, 숨은 공로를 국민들이 이전처럼 몰라준다고 서운해 하기보다는 그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다가가고 소비처를 함께 다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쌀 생산농가의 급격한 재배품종 변경은 어렵다. 그럼 소비자의 니즈 변화에 실시간으로 대응해야 한다. 과거 소비자 니즈는 저렴한 가격과 재배지 등을 살피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가격보다는 고품질 쌀과 소포장 쌀, 재배지 등 품질과 기능성은 물론, 가루로 만든 가공식품과 간편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관련기관들도 농가들이 쌀 소비를 염두에 두고 생산할 수 있도록 종자 등 농자재산업, 유통, 쌀 제품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R&D 기술투자와 자금 등 정책적 지원은 물론 6차산업인 식품기업들의 소비처 다변화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채근담(菜根譚)에는 '사람이 노력하면 어떠한 어려운 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의 인정승천(人定勝天)이란 문구가 나온다. 쌀 산업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해법도 생산자인 농업인, 소비자인 일반국민 그리고 정부와 농협등이 함께 고민해 쌀 소비처의 다변화라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정석윤 농협구미교육원 교수<br>
 정석윤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일례로 연간 소비되는 밀가루 200만 톤 중 10%인 20만 톤만 쌀가루로 대체해도 심각한 쌀수급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3차 격리설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등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 쌀 산업이 소비방법 다양화를 통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고 다시금 민족의 생명선인 쌀을 지키면서 농가소득, 국민건강까지 지키는 1석3조 효과를 필자는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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