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정녕 땀을 한 바가지는 흘린 듯하다. 지인은 꽁무니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혼자서 좁다란 골목을 돌고 돌아 포구에 다다른 것이다. 인적도 하나 없는 곳에서 홀로 배회 중이라니. 정녕 '무엇이든'에 사로잡혀 꼭 보고야 말겠다는 무모한 열정의 끝이다. 하늘은 눈물이 날 정도로 푸르고, 바닷물은 왜 그리 파란가. 한참을 걸었는데도 5층 건물은 아직도 멀리 있다. 이방인이나 원주민이나 거리 감각이 없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다. 귓전에 시계 초침 소리가 울리는 듯 마음이 조급해진다.

결국,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린다. 배를 놓치면 이곳에서 묵어야만 한다. 그 후에 펼쳐질 일들이 상상되어 미련을 접는다. 골목을 되돌아가 지인을 만나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얼마쯤 걸어갔을까. 앞만 보고 걸어가다 방금 스친 곳을 무언가에 홀린 듯 돌아본다. 그곳에 내가 원하던 '무엇이든'의 플래카드가 보이는 게 아닌가. 참으로 소설 속 이어도가 따로 없다. 내가 이곳을 찾고자 현지 주민에게 물어보았다. 주민에게 '사진전'과 '갤러리'란 단어가 생소했던가. 지레짐작으로 새로 생긴 건물을 소개한 듯싶다. 여하튼 포구에서 무모한 열정을 접길 잘했다. 신도 터덜거리며 돌아서는 발걸음이 안타까운지 나의 옷자락을 잡아 감춰두었던 걸 보여준다.

주민들은 관심도 없었다. 먹고 사는 일, 생업에 목숨 걸듯 살아온 사람들이다. 한철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고자 애쓰는 지금, 갤러리 사진전이 무에 중하랴. '점포정리'를 내건 상점의 속사정도 도시의 그들과는 다르다. 가게 문을 닫는 게 아니고, 봄철만 장사한단다. 이어 '봄철도 이렇게 습한데, 무더운 여름에 누가 가파도에 오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들의 실상도 모르고 '사진전이 뭐라고' 날뛰었던가. 사진 속 소소한 풍경은 그들이 생활하는 시공간이다. 주민에게 풍경은 새로운 것 없는 삶 그 자체인걸.

나만의 착각이다. 청보리가 익어 베어진 지 오래다. 황량한 들녘 바닥에 남은 보릿짚에는 섬 주민의 땀이 스며 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리밭은 그리 많지 않다. 해풍이 넘나드는 드넓은 들녘에 밭작물을 갈아엎고 조성된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한여름에 피어날 해바라기와 봉숭아, 도라지 새싹이 돋는다. 밭에 주요 작물은 식량이 아닌 관광객의 시각을 고려한 사계절 꽃을 심은 것이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철 이른 코스모스밭에 들어가 사람들이 웃고 서 있다. 웃지 않는 사람들, 무심히 스치는 사람은 섬 주민뿐이다.

나를 미치게 만든 단어, '무엇이든' 앞이다. 경로당 벽에 걸린 사진 액자가 장소에 걸맞게 소박하다. 사진을 바라보며 조금 전에 피부로 느꼈던 살가운 바람과 소소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소라껍데기로 치장한 담장이 보기 좋다. 벽화에 담긴 섬 이야기에서 가파도 사람들의 역사와 삶의 문화를 엿본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배 안에서 멀어지는 가파도를 바라보고 있다. 하늘과 바다가 한빛으로 잇닿아 끝없이 펼쳐진다. 작가는 청보리 물결만이 아닌 그 너머 가파도만의 무엇을 발견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 너머엔 아무것도 없다. 가파도는 굴곡 없는 평평한 지형에다 사방에 드넓은 바다가 펼쳐질 뿐이다. 섬은 정녕코 수평선처럼 바닥에 바싹 엎드려 있다. 돌아보니 가파도의 신화를 엮은 주민이 바로 그 '무엇'이지 싶다. 더불어 섬 중심에 우뚝 서 있던 내 모습도 보태리라.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