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집 근처 소나무 숲에서 뻐꾸기가 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에 반가움도 잠시, 터전을 잃은 뻐꾸기 때문에 가슴 아프다. 며칠 전 개발을 이유로 숲의 나무 일부를 베었다. 그리고 포크레인 굉음이 한동안 허공을 채우더니 나무를 파헤친 자리에 젖은 흙이 붉게 빛났다. 낯설던 진흙도 폭염에 말랐고 주민들 기억 속에서 숲은 잊어 가는데 뻐꾸기는 떠나지 않았나 보다. 자신의 존재를 피 끓는 소리에 담아 도시 하늘 가득 퍼트리고 있다. 나, 여기 있어. 알아달라는 것인지, 곧 떠날 것이라고 하는 건지 숲을 바라보며 들으면 안타깝다가도, 청량한 뻐꾸기 소리가 마냥 좋으니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농사짓는 밭에서도 뻐꾸기 소리를 듣는다. 주변 우거진 숲에 사는가 보다. 다시 올라온 도라지밭 풀을 뽑는 동안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리듬에 맞춰 뽑게 되어 지루하지도 힘들지도 않다. 그곳에서 오래도록 울어주기를 속으로 바란다. 가끔 비둘기도 운다. 둘의 화음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합창처럼 다양한 새들의 소리가 한꺼번에 들릴 때도 있다. 소리가 높아서 하늘로 솟는가 하면 저음으로 잠깐 우는 새 소리는 땅으로 잠긴다. 날아다니는 듯 가깝게 와 닿다가도 이내 멀어지는 새소리에 노동의 힘겨움을 잊는다. 새가 있어 고마웠다.

그러나 행복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양쪽 숲을 사이에 두고 있는 밭에 콩을 심었다. 마을 어른들이 가르쳐준 콩 심는 시기는 새들이 알을 품고 있을 때다. 새들이 알을 품는 것에만 집중하여 콩을 먹지 않는단다. 그래도 여유 있게 심으라고 한다. 새들에게도 몇 알은 나눠주고, 남은 것으로 잘 키워서 사람이 먹는 것이 농사란다.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거란다. 주변에서 새들의 피해를 막는 여러 가지 방안을 알려주어 귀담아들었는데 어른들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조영의 수필가

콩 심고 여러 날, 싹이 나오는데 중간중간이 텅 비었다. 새가 먹은 것이다. 다 먹지 않았을 거니까 기다라면 나온다고 한다. 속상했지만 새소리를 생각하며 잊었다. 며칠 후에는 나온 콩 싹이 모두 잘렸다. 비가 온 뒤라 발자국이 남았다. 훑고 지나간 자리마다 고라니 발자국이 선명했다. 봄에도 고추 모를 먹어 낭패를 본 경험이 있기에 흥분하자 뿌리가 뽑히지 않았으면 싹은 다시 나온다며 또 기다리라고 하신다. "다, 그런 겨."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는 말씀이 처음 농사짓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숙제다.

낮에는 아름다운 소리로 마음을 흔들어 놓고는 몰래 날아와 훔쳐 먹는 새도, 순하고 착한 눈빛으로 농작물의 어린싹을 성찬으로 먹은 고라니도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동물이다. 그러나 아직 분별없이 바라볼 여유가 없 나는, 생각할수록 진짜 얄밉다. 도시개발과 무분별한 퇴치용품으로 동물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빼앗긴 것에 화가 치미는 것은 솔직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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