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환경·여성에 무게… 지역 현안 목소리 내는 책방

최세연 대표는 속초 독립서점 '완벽한 날들'을 6년째 운영하고 있다. /김명년

[중부매일 박은지 기자]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뒷편에 도보로 3분거리에 위치한 독립서점 '완벽한 날들(대표 최세연)'은 지난 2016년 12월께 가오픈 형태로 문을 열어 영업을 하다 2017년 정식으로 오픈해 올해로 6년차를 맞이했다. 그동안 직원을 채용하고, 배우자인 하지민씨와 함께 운영하다가 지난해부터는 대표인 최세연씨가 운영을 도맡고 있다.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에서 이름을 따온 이곳은 1층은 서점과 카페를 겸한 공간으로 2층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는 곳이다.

지난 7월 6일에 찾은 서점 인근에는 오는 2023년 완공예정인 아파트 단지가 한창 조성되고 있었다. 독립서점 옆에 신규 아파트 단지 입주는 새로운 고객확보 차원에서 반길 일이 아니냐는 질문에 최세연씨는 다소 시니컬한 답변을 내놨다.

"사실 지역민 입장에서는 서점에 가는 이유가 신간서적을 둘러보거나 아이들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구매하기 위해서인데 저희 서점은 이런 조건에 잘 맞지는 않는다. 우선 장서량이 적고 신간소개 등 순환이 좀 느린 편이다. 대신 10권 미만의 책을 선별해 판매하고 취향이 분명한 책을 기반으로 독서모임과 북토크, 낭독회, 강연 등을 통해 소통해왔다. 지역주민들이 서점에서 책을 사는 1순위가 될 수 없으나 관광지인 속초의 특성상 전국적으로 노출돼 인지도 상승효과를 얻었다. 물론 게스트하우스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희망도서 바로대출 서비스'를 통해서 운영에 도움을 받고 있다. (희망도서 바로대출 서비스는 이용자가 도서관에 대출하고 싶은 희망도서를 서점에 주문하고 대출과 반납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서점은 책 판매로, 이용자들은 도서구입비 부담을 줄여 호응을 얻고 있는 상황.)"

서점 곳곳에는 인권, 페미니즘, 노동, 생명존중 등의 가치를 담은 책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원도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 이유출판, 전남 순천 열매하나, 경남 통영 남해의봄날 등 다섯 곳의 출판사가 기획한 인문 에세이 '어딘가에는 @ 있다'시리즈도 책방 한곳을 묵직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강연회와 독서모임, 낭독회 뿐만 아니라 매월 책 1권씩을 집으로 배송해주는 '정기구독' 서비스 등 활발히 진행했던 일들은 잠시 줄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독립서점에게도 시련의 계절이자, 인고의 세월이며 터닝포인트를 강제로 맞닥뜨리게 했다.

"정기구독 서비스는 영화배우 이미도씨의 제안으로 시작하게 됐다. 물리적 거리때문에 아쉬움을 표했던 그녀가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에 시작이 됐고 100명 미만으로 운영하는 등 전국에 있는 독자를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출판된 책 중에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혼자 보기에 아까운 책들이 있었다. 구독서비스를 열자 고객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코로나19로 운영 원동력이 점차 소진됐다. 독서모임도 거리두기 제한으로 일정이 잡히고 취소되기를 수차례 반복하다보니 심리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1권의 책을 결정하기까지 품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중단하게 됐다. 동종업계 분들도 한목소리로 어려움을 호소했던 시기였다."

최 대표가 그 시기에 추천했던 책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김혜진의 '너라는 생활',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 추혜인의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김정연의 '이세린 가이드' 등 소설, 에세이, 만화 등 분야도 다양했다. 자본에서 소외됐지만 꼭 필요한 목소리가 담겨 있는 책을 선별하는 그의 안목은 10여년전 부천의 한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했던 경험과 무관치 않아보였다.

그런 운영철학은 실제 속초시에서 추진한 '영랑호 부교 계획' 강행에 반대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환경 파괴와 절차의 위법성 등 사업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하는 활동은 시인 김현, 작가 은유, 작가 홍은진과 영랑호 걷기 등 행사도 진행하는 등 지역의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속초 토박이부터 최근 이사 온 주민들까지 다양한 환경과 연령대의 독자들과 활동하고 있다.

"우리 서점만의 특색을 꼽자면 '결핍, 솔직, 여백'으로 답할 수 있다. 문화공간에 대한 '결핍'과 갈증을 느끼는 분들의 욕구가 세미나, 연극, 공연, 영화감상 등 소규모 모임 장소로 활용되면 좋겠다. '여백'의 에너지를 갖고 우리 서점을 만나시길 바라는 희망도 있다. '솔직하다'는 부분은 선명하고 투명한 가치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성폭행 피해자인 노동자의 글, 페미니스트에 관한 이야기 등 서가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려고 한다. 영랑호 개발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것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영업엔 도움이 되지 않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기성세대로서 의무나 책임감을 느낀다. 그것이 솔직함의 가치이자 행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6년차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최세연 대표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에 대해 물었다. 그가 향후 그려갈 독립서점은 어떤 모습일까.

"하루하루 문을 열고 닫는 일은 참 보람이 있다. 행복한 일부터 힘들고 지치는 일까지 모두 마주하게 되는 시기를 서점과 함께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보람찬 순간이 아닐까. 책을 좋아하고 북토크 등 활동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좋은 기운이 있다. 반대로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특정 다수의 손님을 상대하기란 늘 예측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손님의 성향이 다양한 만큼 서점에 오게 된 계기 역시 다양했다. 늘 반갑지 만은 않은 상황이고 감정에 지배 당하기 시작하면 서점 운영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며 난관에 봉착하기도 한다. 처음 서점을 열었을 때는 많은 것을 해내고 싶었지만 이젠 꾸준히 잘 지속해내는 힘을 기르고 싶다. 그런 게 잘 자리잡힌 서점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최근 '나의 해방일지'란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 저도 시간이 나면 책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전세계의 독립서점을 직접 찾아가고, 책을 살펴보고, 구입하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작은 동네, 골목골목을 찾아와야만 만날 수 있는 독립 서점을 기억하고 이용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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