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언제부턴가 몸에 무엇인가 나기 시작한다. 어릴 적 물 사마귀가 난적이 있긴 하지만 그 후론 별일이 없더니 예고 없이 내 몸에 자기들 집을 짓는다. 한 두세 해 되었던가? 두 눈 사이, 오른 눈 쪽으로 혹이 커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없어지겠지 했는데 불편이 더해질 뿐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안경으로 가려지긴 했지만 계속 내 신경을 자극했다.

참다못해 병원에 갔더니 바이러스성 사마귀라며 떼어내자고 했다. 한두 번 시도를 하다가 피가 많이 나고 부근에 신경이 여럿 지나간다며 대학병원을 추천해준다. 걱정이 많아지고 덜컥 겁이 난다. 대학병원에선 수술하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일을 키웠나 싶었다. 그 후론 청결하면 바이러스가 못 오겠지 하고 안 쓰던 비누를 매일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한 두 해 곱게 지나는 것 같더니 이번에는 갑자기 코밑이 부어올라 불편했다. 좋아지겠거니 했는데 자고나면 더 커져갔다. 전번 경험으로 틀림없이 또 바이러스성 사마귀였다. 피부과를 찾아갔다.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았다. 사마귀는 쉽게 재발할 수 있단다. 확실한 방법이 없냐 물으니 기도하란다.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는 에두른 표현이다. 이번엔 다른 방 앞으로 데려가 반듯이 누우라 한다.

뭔가 '지지' 소리가 들리고 타는 냄새도 난다. "아이고, 피가 많이 나네, 안쪽까지 번졌네" 몇 마디 말들을 중계하듯 하면서 한참을 갈고 태우듯 하더니 거울을 들고 내 모습을 보여준다. 코밑에 붙어 있던 게 말끔히 제거되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의 공격에 쩔쩔맨다는 사실이 역설적이다. 장구한 역사를 함께 해왔을 세균의 존재를 불과 수백 년 전에야 알아냈다. 생명체의 활동이 끝나면 이 땅에 남겨진 존재를 다시 분해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그들이다. 결국 인간도 미세한 세균에게 먹히고 마는 존재다. 한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 속에 그 이치를 벗어나 홀로 있는 듯한 인간의 오만은 착각일 뿐이다.

내가 바이러스의 공격에 자주 무너지는 게 유독 그들이 현재의 나를 목표 삼아 집중 공격하기 때문은 아니리라. 나의 건강과 면역력이 힘에 부쳐 가끔씩 그들에게 틈을 내주는 것일 게다. 스스로를 맹신하지 말고 좀 더 신중하게 살라는 경고일 게다. 그래도 내게는 이런 경고장이 늦게 온 것 아닐까?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삼십 대에는 내가 건강하고 약한 곳이 한 곳도 없는 줄 알았다. 그 즈음에 기도원엘 갔더니 '치유집회'를 하고 있었다. 집회 말미에 '치유의 시간'이 있었다. 눈을 감아 소리로만 상황을 파악했는데 여러 가지 질병 이름이 불리고 많은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치유를 간구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 여겨 앉아 있었더니 무슨 병이든 어디 불편한 곳이 있으면 다 일어나란다. 이상한 예감에 실눈을 떠보니 모두 일어나 치유를 간구하고 있었다. 나도 슬그머니 일어섰다.

생각해보니 눈도 문제가 있고 소화기능이 약하고 치아에 어려움이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 그렇지, 몇 가지 기관들이 연합해 발휘하는 기능에는 날 겸손케 하는 부분들이 너무도 많다. 이미 여러 경고장을 받고도 잊고 살았던 게다. 둔감한 내게 한 번 더 경고장이 온 게다. 더 겸손하게 조심하며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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