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종시에서 준공을 앞둔 테라스형 아파트를 둘러싼 입주예정자와 시공사 간 갈등이 행정관청으로 그 불똥이 옮겨붙고 있다는 씁쓸한 소식이다. 세종시가 시공사의 무단 설계변경과 시공 불량을 알면서도 시민보다는 시공사 측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입주예정자들은 업체와 행정관청의 유착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고 하니 참담한 생각이 든다.

세종시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하지만, 오죽하면 입주예정자들이 그러한 시선으로 바라볼까 되새겨 봐야 한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을 제대로 실천했다면 그러한 억측도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고서에 보면 '외밭에서는 벗어진 신발을 다시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는 머리에 쓴 관을 고쳐 쓰지 말라(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고 했다. 그만큼 공직자들은 처신이 각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세종시의회에서도 승인권자인 시가 건축물 사용승인 전 주택법 등 관련 규정 위반 여부를 철저하게 확인한 후 행정 절차를 충실히 이행해 입주예정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하겠는가. 의회가 필요하면 행정사무감사 등을 통해 향후 진행 상황에 대해 적정 처리 여부를 점검하겠다고 하니 그 또한 지켜볼 일이다. 국민으로부터 의무와 책임을 부여받은 공직자들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일은 없어야 마땅하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모두 자신의 자리가 정해져 있는 만큼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세종시 공직자의 "시공사나 입주예정자 모두 민원인이기 때문에 중간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려 한다"는 얘기야말로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시공사는 당초 약속대로 시공하면 되는 것이고,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사달이 났다면 그 책임을 묻고 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행정관청의 역할이다. 무작정 입주예정자의 편을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시민의 피해를 외면하고 업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게 공직자가 할 말인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망족(忘足)은 이지적야(履之滴也)'라고 했다.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편안하기 때문에 발을 잊을 만큼 편안한 것이고, 모든 사람은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공직자들이 앞장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힘없는 국민들은 도대체 어디에 기대야 한다는 말인가.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로운 국가'란 차등이나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없는 국가라고 정의했다. 이 말의 핵심은 '공정'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는 바로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연목구어(緣木求魚)에 지나지 않는다. 민심을 이기는 정치와 권력은 절대로 없다. 그래서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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