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돌 잔칫상에 실타래, 책, 연필, 돈, 청진기 등 다양한 물품이 차려진다, 아이가 무엇을 집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미래를 점친다. 연필과 책을 집으면 공부를 잘한다는 둥, 돈을 집으면 부자가 된다는 둥, 청진기를 집으면 의사가 된다는 둥 말이다. 많은 부모는 이때 아이가 다른 것보다 실타래를 먼저 집기를 원한다. 실타래 길이만큼 장수(長壽)를 기원하기 때문이다.

생일에는 주로 국수를 즐겨 먹는다. 국수는 장수의 의미가 담겨 있다. 장수는 오래 사는 것이고, 국수가 다른 음식보다 무척 길다는 공통점에서 비롯됐다. 국수와 장수의 등식은 중국의 사실(史實)에도 근거한다. 중국 전한 무제(武帝)는 신하들과 어떤 신체를 가진 사람이 오래 사는가를 논의했다. '얼굴이 긴 사람이 오래 산다.'라는 중지가 모였다. 중국어 '얼굴 면(面)'이 '국수 면(麵)'이라는 의미가 있고, 발음도 '미엔(mian)'으로 같다. '얼굴 긴 사람이 장수한다.'가 '긴 국수가 장수한다.'로 둔갑했다. 이때부터 '긴 국수를 즐겨 먹으면 장수한다.'라고 믿기 시작한 셈이다.

국수는 생일 이외에 결혼식이나 회갑연에도 즐겨 먹는다. 긴 국수 가락처럼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바람이 담겼다. 중국 당나라 때 아예 '장수면(長壽麵)'이 등장하기도 했다. 장수면의 특징은 면이 한 가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먹을 때 절대 끊어지지 않아야 장수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장수와 국수, 실 등은 길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그 셋을 등식화하고 생활화했다.

아주 먼 그리스 시대에 인간의 운명은 무엇에 비유됐는가? 역시 국수 가락처럼 긴 실[?]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모이라이' 신이 등장한다. '모이라이'는 '각자가 받은 몫'이란 뜻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각자 주어진 운명의 몫이 있고 이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최고의 신 제우스도 인간 운명의 영역에는 전혀 개입할 수 없었으니 인간이야 별다른 수가 있겠는가? '모이라이'는 3명의 신의 복합체로 태초의 신인 밤의 여신 닉스의 딸들이거나 제우스와 율법의 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이 3명의 신은 각자 인간 수명과 고통을 할당하고 집행하는 운명의 여신들이다.

클로토는 인간의 임신 기간인 10달을 관장하며 실을 잣는다, '실을 잣는 여신'이다. 라케시스는 태어난 인간에게 그 실을 나누어 준다. '실을 할당하는 여신'으로 실 길이는 인간 수명을 상징한다. 아트로포스는 그 실을 끊음으로써 죽음의 시점을 결정한다. 가위로 생명 실을 가차 없이 잘라 인간 생명을 거둬들인다. '되돌릴 수 없는 여신'이다. 클로토가 실을 뽑으면, 라케시스는 이를 감고, 아트로포스는 그 실을 끊는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신으로부터 얼마나 긴 실을 받고 그 실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짧은 실에다 일찍 끊어버리면 단명이다. 긴 실에다 가위질이 지연되면 장수다. 생명 연장을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다. 인위적인 의학 기술과 운동에 집착해도 죽음의 시점을 연장할 수 없다. 이렇다면 장수를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모두 부질없는 짓이란 말인가?

의과학적 측면에서도 실과 운명이 관련 있다. '텔로미어(Telomere)'다. 진핵생물[세균, 바이러스를 제외한 모든 생물] 염색체의 양팔 각각의 말단부에 존재하는 입자다. '맨 끝 Telo'와 '부위 mere'의 합성어로 노화와 관계있다. 텔로미어가 닳아버리면 세포분열이 멈추고 노화가 진행된다. 곧 죽음이다.

텔로미어 검사로 어느 정도 생명을 예측할 수 있다. 텔로미어 복제가 가능하다면 또는 텔로미어의 마모 방지약을 만든다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십여 년 전 개발한 '텔로머레이즈(Telomerase)'란 효소를 쥐에 주입해 쥐의 노화 방지에 성공했다. 성공 뒷면에는 부작용, 암(癌)이 발생해 궁극적으로 불로장생의 꿈을 이루지 못한 실정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하지만 의학 기술의 획기적 발전에 따라 많은 불치병이 정복되고 평균 수명이 늘고 있다. 인간은 겁 없이 질병 제로화와 무병장수에 도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위해 돌 잔칫상에서 실타래를 움켜잡고(돌이 지나 이는 불가능), 생일마다 국수 먹고. 아트로포스 신에게 가위질하지 말라고 빌고, 그다음 텔로미어 복제 기술개발을 기다려보자, 영원한 삶은 아니라도 더블 환갑이 가능한 장수는 기대해 볼 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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