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진순 한국은행 충북본부 부본부장

'레디 플레이어 원' 영화의 첫 장면은 트레일러들이 층층이 쌓인 2045년 오하이오주 빈민촌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VR을 끼고 손을 허공에 휘두르며 각자 무언가를 하고 있다. 찌그러진 트레일러로 들어가 주인공도 바로 VR을 착용하고 가상세계로 들어간다.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2045년도의 영화 속 이야기지만 최근 메타버스의 성장 속도를 보면 그다지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다.

오래전부터 비대면 시대가 예상되었으나 진척 속도는 생각보다 더뎠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비대면 시대로의 전환이 앞당겨졌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온라인으로 출근해서 회의와 업무를 대신했고 아이들 수업도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가상세계로 스며들었다. 게임이나 SNS를 즐기는 정도로만 이해했던 가상공간을 현실 세계에서 하던 업무나 회의를 지속할 수 있는 자신과 연관된 세계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들어 올 때 노를 젓는다고, 이를 기회로 IT 기업들은 메타버스 관련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시장 확장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SNS 기업에서 메타버스 기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사명을 메타(Meta)로 변경하고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를 출시했다. 로블록스는 로블록스 스튜디오를 출시하고 2020년 이후 급성장해 2021년 3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까지 했다. 국내도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네이버, 카카오, SK 텔레콤 등 국내 IT, SNS, 통신 기반의 빅테크 기업들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출시하고 게임, 교육, 금융, 유통, 문화 등 다양한 분야로 서비스를 확장하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메타버스 시장이 지금처럼 성장 동력을 얻게 된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코로나 대유행 때문이기도 하지만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이용자들이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특징도 크게 한몫했다. 게임회사만 콘텐츠를 제공하고 이용자는 일방적으로 소비만 할 수 있었던 기존 게임과는 달리 최근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이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고 이것을 다른 이용자들에게 판매해 이익을 얻을 수도 있는 경제활동이 가능하다. 현실 세계에서는 여러 제약조건으로 어려웠던 것이 메타버스에서는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창출된 것이다.

박진순 한국은행 충북본부 부본부장
박진순 한국은행 충북본부 부본부장

물론 지금의 변화만으로 앞으로 메타버스 생태계가 여전히 빠른 속도로 구축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런데 우리가 또 하나 관심 있게 봐야 할 점은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가 교환되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 만큼 기존의 경제학 및 경제법칙이 메타버스 시장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이고, 기존의 경제학이 유효하지 않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시장을 규제하는 결제 당국이나 중앙은행도 메타버스라는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지도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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