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범부채꽃이 눈길을 끈다. 고택 초입에 적당히 늘어진 능소화꽃은 대문과 잘 어울린다. 돌담으로 둘러진 입구의 한옥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초가집과 기와가 공존하는 고즈넉한 고택, 고선재를 찾았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고택은 입구에서부터 아늑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낸다.

청주 고은리 주택으로 불리는 고선재는 조선 철종 12년(1861)에 지어져 국가 민속 문화재 제133호로 지정, 관리를 받고 있다. 세월을 지나온 어제 모습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이루어진 듯한 느낌이다. 오늘은 고택에서 조선의 시간을 느껴보고 싶다.

백 년이 넘게 한자리에 지켜온 기와집과 초가집. 비록 집은 수리를 하여 변하였어도 땅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고, 사람만이 집을 이어받고 있다.

사장님은 5대째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미술을 전공하였다는 부부. 감각적인 스타일이 멋지다. 사모님은 양 갈래머리를 땋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고택을 구경하러 시도 때도 없이 오는 관람객들 때문에 늘 긴장 상태로 있어야 할 것 같아서다.

대청마루에 앉아 차를 마신다. 다기에 정갈하게 놓인 녹차를 우려 마시며 우리의 수다는 끊이지 않는다. 고택에 대해 말을 하는 사모님 이야기를 들으며 고택에 대한 애정을 느낀다.

청주 고은리 주택의 또 다른 이름인 고선재는 많이 베푸는 집이라는 뜻이다. 넓은 땅을 팔지 않고 지금껏 고선재를 지키고 있단다. 대청마루에 앉아 쉬었다 가라고 해도 미안해서인지 관람객들이 주저해서 찻집을 운영한다. 비 오는 날 다시 와서 쌍화차 한 잔 마시며 대청마루에 앉아 비 오는 고택 풍경을 보고 싶다.

문살도 화려하지 않지만, 삼중으로 되어 있다. 창호지 문을 열고 들어간 방에서 등 만들기 체험이 이루어졌다. 한지를 자유자재로 찢어서 운용지에 붙이고 등살에 입힌다. 색색의 한지를 만지며 심란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 강연이 생각난다. "행복과 만족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다."시련은 자주 오기 때문에 행복을 자주 느껴야 한단다. 여기서 행복은 누구랑 수다를 떨던가, 누구랑 음식을 먹던가, 하는 아주 작은 경험이다. 사소한 행복은 기록되고 행복을 꺼내 볼 수 있는 일들이 존재한다. 기록된 행복들이 있어야 학생은 책 첫 장을 넘기고, 첫걸음마를 떼고, 장사하는 사람은 가게 문을 열게 만드는 힘이 생긴다고 하니, 나도 오늘 등을 만들며 행복을 기록하고 있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제멋대로 색색의 종이를 찢어 붙였다. 사람이 제각각이듯 모양도 다 다르다. 풀로 붙여 완성된 등에 전구를 밝히자 탄성이 나온다. 이런 프로그램을 얘기해준 지인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일정을 다 무시하고 바람 쐬러 나온 길. 고택의 대청마루에 앉아 서까래를 보고 대문 역할을 하는 솟을 문을 보고 마당에 피어있는 백일홍과 나리꽃을 보는 즐거움도 컸다.

솟을문 옆에 줄기를 뻗은 능소화는 돌담과 잘 어울렸다. 160여 년 된 안채를 제외한 사랑채와 나머지 건물들은 1930년대에 지어졌다. 볕 드는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한옥의 냄새도 빛도 다 누려보고 싶다. 눈 내리는 날 뜨끈뜨끈한 사랑채 바닥에 누워보면 어떨까.

조선시대 고택에서 시간을 거슬러 자연스럽게 소소한 행복을 찾기에 딱 좋은 곳, 고선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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