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현 칼럼] 한기현 논설고문

윤석열 정부의 '아니면 말고식'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대통령실과 여당은 최근 역대 최고 인플레이션은 세계적인 현상이며, 현 경제 위기는 모두 문재인 정부 탓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달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지난 5년 동안 소득 주도 성장, 임대차 3법, 탈원전 정책 등 국익보다 정치 이익을 우선하는 등 정치가 경제 발목을 잡았다"며 문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무너진 민생 안정을 위해 대통령 공약인 연금, 노동, 교육 개혁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민생 우선 외침은 말 뿐이었다.문 정부에 책임을 떠 넘긴 것도 모자라 국민 제안과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한 등 사전 준비와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설 익은 정책을 남발해 국민 갈등만 부추겼다.

정부가 문 정부의 '청와대 국민 청원'을 폐기하고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며 도입한 '국민 제안 제도'는 부실한 투표 시스템으로 결국 없던 일이 됐다.당초 국민 제안은 온라인 투표를 통해 '우수 제안' 3건을 뽑아 정책화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일 대통령실은 "어뷰징(중복 편법 전송) 문제로 (우수 제안 3건을)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제안위원회가 우수 제안으로 선정한 10건 중 최고(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57만7천415표)와 최저(외국인 가사 도우미 취업 비자 허용·56만784표) 득표차가 1만6천 여표에 불과해 변별력을 잃었기 때문이다.사전 추진 계획과 달리 실명 인증과 로그인 없이 투표가 가능해 어뷰징을 막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정책은 한 술 더 뜬다.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달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학제 개편 방안의 하나로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정책을 발표했다.하지만 학부모 단체 등이 강하게 반발하자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박은경 평생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대표 등 학부모 단체 대표 7명은 2일 교육부 주관 학부모 간담회에서 교육 정책의 졸속 진행을 비판하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박 대표는 "지금 사교육이 난리가 났다"며 "이런 황당한 일을 만들면서… 저희는 사퇴 운동까지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박 장관은 "국민이 정말 원하지 않는다면 정책은 폐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또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대안으로 나온 것인데 대안은 목표를 위해 바뀔 수 있다"며 정책 폐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한기현 국장대우겸 진천·증평주재
한기현 논설고문

한마디로 국가 주요 정책과 민감한 이슈를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졸속 추진해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을 부추기고 정부 불신만 자초한 것이다.

정부 정책은 최소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급하다고 우물서 숭늉을 찾으면 안된다.이를 무시하면 부작용과 반발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대통령실과 여당은 더 이상 설 익은 정책으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면 안된다.'아니면 말고식' 정책과 '책임 떠 넘기기'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최근 여론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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