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어떤 사안을 놓고 격하게 논쟁할 경우 평행선을 긋거나 갈수록 주장의 골이 넓어질 때가 있다. 서로 이해관계가 없어도 괜스레 남의 언급이나 주장에 대해 비난할 때도 있다. 특히 이해충돌을 빚는 경우 무조건 사리에 어긋난다며 그 비난의 강도를 높이기도 한다. 이때 시의적절한 말이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자구 대로 해석하자면 '말할[言語] 길[道]이 끊어진다[斷].'는 뜻이다.

언어도단은 주로 상대의 주장에 대적할 논리나 증거가 부족하거나 극과 극에 처한 집단이나 개인들이 논쟁할 때 발생한다. 언어도단이라 지적받으면, 자존심 훼손은 물론 수치스럽고 모욕당하는 기분이다. 이때 그들은 받은 그대로 아니면, 더 심하게 되받아치며 정신적 보상을 받으려 시도한다.

언어도단은 강력한 부정의 표현이자 억지의 도구로 작용한다. 이쯤 되면 정상적 대화는 중단되고 말싸움으로 비화한다. 대화의 본질은 사라지고 그 본질의 그림자만 남게 된다. 서로 헛것을 붙들고 '악악' 거리는 꼴이다.

중국의 대승불교 경전인 <보살영락본업경:菩薩纓絡本業經>에 언어도단과 관련된 구절이 나온다. "불경에 이르기를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가는 곳이 없어진다(經云 言語道斷 心行處滅:경운 언어도단 심행처멸)."이다. 언어의 길은 무엇이고, 마음이 가는 곳은 또 무엇을 일컫는가? 범인으로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고지선의 궁극적 진리는 말과 문자로 표현할 수 없고, 사유로도 그 진리에 미칠 수 없다는 말이다. 종교적 신성성이 진하게 묻어난다. 누구든 사용에 신중함을 기해야 하는 문장이다. 그 의미가 '진리는 말이나 글 등 형식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을 전하고 깨닫는다.'라는 선불교 교리 불입문자(不立文字)와 유사하다.

이런 언어도단이 이구동성으로 마구 쓰이고 있다. 특히 입속에 가시가 돋고 뇌리에는 이해타산과 당리당략, 억견(臆見)과 감정 등이 꽉 들어찬 정치인들이 그렇다. 신성한 언어도단이 그들의 입과 뇌리에서 불행하게도 활개 치고 있는 셈이다. 신성시해도 모자랄 판에 권력의 노예, 정치인들 도나캐나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말이다. 왜 그럴까. 합의 도출을 위한 타협이나 대화가 '가물에 콩 나듯 함'을 부정할 수 없는 정치 현실 때문일까. 권력을 잠시 맡긴 주민을 무시해도 유만부동이지, 감히 언어도단을 혀에 올려 권력을 남용하다니.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그 사례를 보면 이렇다.

"경찰의 중립성을 지키고자 하는 서장들을 쿠데타에 비교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자 적반하장이다."(민주당 우상호 비대위원장. 7월 25일). "영일만 횡단 대교가 해군 군함 통행과 군 작전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언어도단에 불과하다."(이강덕 경북 포항시장. 7월 25일). "법사위원장 자리를 우리 국민의힘에서 맡는 것은 이미 계산이 끝난 사안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것을 가지고 통 큰 양보라고 포장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송언석 국민의힘 6월 29일). "이번에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문재인 정부 검찰이 3, 4년 수사를 해야 함에도 묵혀뒀던 사건들을 수사하는 것이고 무슨 정치보복 운운하는 건 언어도단이다."(권성동. 6월 17일).

이 밖에도 정치인들이 언어도단을 사용하며 논쟁을 벌이거나 비난하는 사례는 많다. 상대 당 의원의 말을 개인이나 당리당략의 판단기준에 맞춰 '언어도단'이라며 무시하는 것은 이유 없고 졸렬한 반항이기도 하다. 정치적 상황이 이러하니, 어찌 보면 '언어도단'은 당연히 등장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흑백논리와 갈라치기, 철저한 당리당략, 첨예한 이해관심 등 극한 대립의 정치가 판치는 현실에 휩싸여 도통 상대의 주장을 일관성이 부족한 논리라고 몰아붙이는데 그 이유가 있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어불성설(語不成說). 어불근리(語不近理)'란 말이 있다. 서로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아 상대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어이가 없는 말이라 점에서 언어도단에 버금가는 성어다. 정치인들! 차라리 이 말을 사용해라. 언어도단은 종교적 신성성이 담긴 고사성어이지만, 어불성설 등은 언어형성에 사연이 없는 단지 사자성어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말이 안 되는 짓거리를 밥 먹듯 해 그들 자체가 언어도단이라는 점에서 본인 얼굴에 침 뱉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얘기다.

언제 정치인들의 입에서 향기 나는 소리가 날까? 요원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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