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경아 청주시 내덕2동행정복지센터 주무관

나는 소위 쟁여놓기 좋아하는 '맥시멀리스트'다. 물건을 살 때 많이 사면 싸니까 묶음으로 사는 걸 좋아하고, 혹시 언제 어디서 필요할지 모르니 지금 당장은 필요 없지만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 책상에 집 수납장에 물건이 넘쳐난다. 이번 인사에 전보인사로 부서를 옮기게 되어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 도저히 혼자서는 내 물건을 전부 옮길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부서를 옮기는 다른 직원들은 상자 하나 가뿐히 들고 오는데 나는 바리바리 짐가방이 넘쳐나게 들고 가서 옮긴 부서 직원분들이 오늘 내로 짐 정리를 할 수 있겠냐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걱정해 주셨다. 업무 시간이 끝나고 짐을 정리하면서 굳이 필요 없는 물건은 집에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물건을 빼보니 가져온 물건의 삼분의 일은 사무실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굳이 없어도 되는 물건들이었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너무 물건이 많은 것도 결국은 나에게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이 많다 보니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이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있는지 몰라서 필요 없는 물건을 다시 사는 경우도 있었고 필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공간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뇌과학자들이 말하길 물건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보다 여백이 있는 공간, 천장이 높은 공간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기에 좋다고 한다. 비어있는 공간이 물리적인 물건이 아닌 상상력으로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경아 청주시 내덕2동행정복지센터 주무관
김경아 청주시 내덕2동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전에 관공서 건물에 대한 생각도 그랬다. 넓은 로비가 텅 비어 있는 것이 공간이 아까웠고 비어있는 공간에 '북카페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휴공간이 없이 100% 공간을 활용하고 채워 놓는 것이 공간활용을 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 전까지 들었다. 하지만 행정복지센터 앞 넓은 공간에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해 벤치에 앉아 쉬고 계신 모습을 보았을 때 ' 혼자 계시면 선풍기의 전기요금이 아까워 못 틀고 계시는구나'라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그래도 이렇게 더위를 피할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비어 있는 공간은 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공간의 목적과 주인이 변화무쌍하게 바뀔 수 있다. 오늘은 반찬봉사를 위한 주방이 될 수도 있고, 요즘처럼 더운 날이면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해 쉴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되기도 한다.

관공서의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를 받은 경험이 종종 있었다. 관공서의 유휴공간을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거창하거나 넓은 면적을 제공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비어있는 공간에 우리의 상상력을 채워 넣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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