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올해로 광복절(光復節)이 77주년이 되었다. 나라를 되찾은 것을 왜 빛을 회복했다고 할까? 나라를 잃으면 인간의 자유와 생명체로써의 존엄한 빛을 잃기 때문이다. 오직 나라를 되찾음으로써 생명의 빛을 회복할 수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와 땅을 가로채고, 일본은 아예 침략한 적이 없다고 강변한다. 우리의 옛 역사가 너무 찬란하여 차마 똑바로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의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는 건 우리도 마찬 가지이다. 이스라엘교육에서 역사과목은 오전으로만 편성되는데 학생들의 정신이 더 또렷할 때를 택한 것이다. 이 시간에 할아버지 같은 '랍비'가 학생들의 골수에 이스라엘의 혼을 각인하듯이 자신의 생명을 다 쏟아 부어 가르친다. 이 장면을 직접 본 어느 서울대학교 교수는 "나는 과연 저렇게 뜨겁게 제자들을 교육하고 있는가!"라는 자성의 글을 썼다.

만주에서 발흥한 청나라의 황제의 성씨는 '애신각라(愛新覺羅)'이다. 청나라의 개국시조도 '애신각라 누루하치'이고 마지막 황제도 '애신각라 부의'이다. '애신각라'란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말자.'는 12명 청 황제의 삶의 목표이자 통치 이념이었다. 고구려와 발해, 여진족의 청나라로 이어지는 만주 땅 일대가 우리 겨레의 옛 땅임을 증명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안동 출신 '이원태'(◎坮)는 우리 민족의 이동과 강역의 변천에 따른 '동이구족(東夷九族)'의 범위를 고증을 거쳐 정확한 지도로 남긴다. 환국의 환인, 배달국의 환웅, 옛 조선의 단군 47대 역사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한때 이원태가 재임하였던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서간도에 우뚝 선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1910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기 위해 '우당 이회영', '성제 이시영'등 여섯 형제들이 현 시세 6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급히 처분한다. 안동의 99칸 '임청각'의 종손 '석주 이상용'도 가산을 투척하여 설립과 운영에 동참한다. 그들은 젊은이들의 핏줄 속에 한민족의 혼을 진작시키기 위해 일심을 다 바쳤다. 거룩한 생명의 빛을 광복하려는 정신이 '신흥무관학교 교가'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서북으로 흑룡태원(주, 중원 땅 산서성) 남의 영절(주, 중원 땅 절강성)에 여러 만만 헌원(주, 한족 최초 임금)자손 업어 기르고/ 동해 섬 중 어린 것(주, 일본)을 품에다 품어 젖 먹여준 이가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중략-/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내어 새나라 세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나라의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두 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자유의 깃발이 떳다."/ 이 가사는 중국 대륙의 주요 지점과 서북, 서남 전체가 한민족의 고토이자 활동무대였음을 상기시킨다. 장차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바칠 3천5백명의 독립군들이 웅장한 가슴을 회복하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그 교가를 지은이가 '석주 이상용'으로 '석주'의 손자며느리인 '허 은'님의 회고록에서 밝혀진다. 놀랍게도 1910년 신흥무관학교 교가는 그 땅에 존재한 '고구려인의 노래'와 뜻과 기상이 맥을 같이한다.

(고구려인의 노래) "오호 어리석은 한나라 어린 애들아, 요동은 향하지 마라. 개죽음이 부른다./ 문무의 우리 선조 '한웅'(주, 배달국 천황)이라 불렀느니/ 자손들은 이어져서 영웅호걸 많단다./ '주몽' 태조 '광개토님' 위세는 세상에 울려 더할 나위 없었고/ '유유'(주, 고구려 장군), '일인'(주, 고구려 조의선인), '양만춘'은 나라 위해 옷 바꿔 스스로 사라졌다./ 세상 문명은 우리가 가장 오래니 오랑캐, 왜구 다 물리치고 평화를 지켰다./ '유철'(주, 한 무제), '양광(주, 수 양제)', '이세민'(주, 당 태종)도 보기만 해도 무너져서 망아지처럼 도망갔다./ '영락기공비(주, 광개토태왕 비)'는 천 척/ 만 가지 기가 한 색으로 태백은 높단다."/ 같은 시대인 1400년 전, 중원 대륙의 농민들도 "요동에 가서 억울하게 죽지말자."는 노래를 불렀다하니 안팎이 꼭 들어맞는다.

장영주/국악원 상임고문·화가.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이회영 형제들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고문사, 병사, 객사, 아사 하였다. '이시영' 만이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에 임명되지만 곧 사임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재산 일부환급을 제안했으나 '재산을 찾겠다고 독립 운동한 게 아니라'며 거절한다. '석주 이상용'은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냈다.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음에도 석주의 후손들은 고아원에서 자랐다. 광복절을 지나면서 우리의 정신과 강토의 회복을 목숨으로 추구한 선열들의 마음이 각자의 가슴에 되살아나길 기원한다.

그때 비로소 한,중,일 삼국과 인류의 평화가 지구촌 위에 아름답게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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