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권혁범/또하나의문화/216쪽/9천원

지금으로부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청탁원고로 바쁜 그를 대전대 연구실에서 만났던 때가.

페미니즘이 반(反) 남성주의라는 오해에서 벗기나기 위해 제안된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사회의 강자인 남성이면서 대학교수라는 특권을 버리고 사회적 약자의 편을 드는 비주류 남성지식인으로 여성주의를 이야기했다.

자칭 타칭 붙여진 남성페미니스트라는 호칭으로 인해 그는 여성주의자들에게선 지지를, 권위적 남성들에게선 어김없는 공격을 받아야 했다.

스스로 ‘남자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며 한국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권혁범 교수(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그가 최근 또 다시 아웃사이더임을 표방하며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또하나의문화)라는 책을 펴냈다.

여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진보 지식인으로 꼽히는 그는 이 책에서 성 차별과 폭력, 결혼과 이혼, 남성중심적 관습 등 여성 또는 남성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담아냈다.

여성주의를 진보적 여성들만의 무엇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에겐 책 제목이 거슬릴 법도 한데 권 교수, 이의를 제기한다.

“내용과 형식은 다르겠지만 남자라고 해서 가부장제의 수혜만 받는 것은 아닙니다.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차별하고 억압하면서 얻은 기득권은 독이 될 수밖에 없어요.여성주의는 여성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남성들도 해방시킬 수 있는 이념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에는 스스로 남성페미니스트가 된 자기 고백적 글쓰기와 가부장적 대중문화 비평, 여성관련 정책에 대한 제언이 담겨 있다.

그에 따르면 남자는 네 부류가 있다. 노골적인 성차별 마초와 생각은 그렇지 않지만 성차별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람, 여성학도 배우고 성평등이 뭔지도 아는데 여전히 남성 우월주의적인 남자 그리고 언행일치 페미니스트.

분류에서 가장 극소수인 네번째에 속하는 권 교수는 ‘남녀관계에서 남성이 분명히 사회적 강자이고 권력적인데 그 권력을 반성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열린, 객관적인 지식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내게 여성문제는 남의 문제,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 문제며 나의 문제다.왜냐하면 성차별 메커니즘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나 같은 남성은 사회적으로 또 사적으로 분명 여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특권을 누리기 때문이다.나는 남자로서 여자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여성주의가 여남에게 근본적으로 정의롭기 때문에 또한 수혜자로서 나 자신을 인정하기 때문에 여성주의 편을 택한다.
- 본문에서

여성들 조차 페미니즘에 대해 스스로 정의 내리길 꺼려하는 분위기에서 남성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여성운동의 발전을 위해선 남성과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남성 자체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 남성지배구조가 문제죠. 여성문제의 근본 동력은 여성이겠지만 남성도 여성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니카라과나 쿠바 혁명에 대해 글을 쓰던 사람이 어느 순간 젠더 문제를 쓰기 시작하면서 한편에선 ‘남자가 어째서 그렇게 여자 편만 드느냐’고 야단이었단다.

권 교수는 ‘내가 만약 여자라면’이라는 제목의 서문에 “사회적으로 그냥 생각 없이 성 차별적인 생각에 젖어있는 남성들에게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욕심으로 이 책을 엮었다”고 밝혔다.

권혁범 교수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성과 문화의 정치학’ ‘환경정치학’, ‘인권과 평화의 정치학’을 주로 가르치고 있다.

계간 ‘당대비평’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참여사회연구소)’ 편집위원, 월간 ‘인권’(국가인권위원회) 기획위원, 대전여민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솔, 2000), ‘우리안의 파시즘’(삼인, 2000)(공저), ‘국민으로부터의 탈퇴’(삼인, 200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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