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현진스님 / 관음사 주지

계초심학인문을 지은 지눌(知訥)스님은 고려 중기의 스님으로 돌아가신 뒤 나라에서 내린 시호가 불일(佛日) 보조국사(普照國師)이며 생존시의 법명은 지눌이었다.

그래서 그분을 부를 때 흔히 ‘불일 보조국사’라고 말하고 있다. 사리탑 이름은 ‘감로(甘露)’라고 내렸다.

지금도 송광사 대웅전 뒤쪽에 서 있는 스님의 부도에는 ‘감로탑(甘露塔)’이라고 적혀 있다. 예전에는 나라의 큰 스승에 견줄만한 업적을 남긴 스님들에게는 돌아가신 뒤 나라에서 시호와 탑호를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지눌스님의 생애에 대해 공부했기 때문에 자세한 행장은 생략하기로 한다.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스님의 법명인 지눌이다.

눌(訥)자가 ‘말더듬을 눌’이므로 이 이름을 해석하면 ‘말을 더듬고 지혜가 뛰어나지 못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어리석은 것을 안다는 말이기도 하다. 명리에 밝고 권력욕에 민첩한 그런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겸손한 그런 삶을 지눌이라고 말한다.

공부하는 데에는 ‘천천히, 느리게’ 걸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스님은 평소 ‘우행호시(牛行虎視)’를 강조했는지 모른다. 우행호시의 삶은 ‘걸음은 소걸음처럼 신중하게, 정신은 호랑이 눈빛처럼 번득이게’ 사는 자세를 말한다. 이러한 삶을 산다면 자신에게 더욱 엄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님이 손수 지은 자호(自號)가 있는데, 바로 목우자(牧牛子)이다. ‘소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너무나 멋진 이름이다. 우리의 마음을 비유할 때 흔히 소를 말하고, 그 찾는 과정을 10가지로 나눈 것을 십우도(十牛圖), 또는 심우도(尋牛圖)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찾고 깨닫는 이치가 마치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스님의 수행가풍이 지금까지 이어져 송광사의 스님들은 청정한 수행 정신을 일러 ‘목우가풍(牧牛家風)’이라고 부르고, 그 가풍을 실천하고 있다.

아마 보조스님의 이러한 목우가풍은 무소유의 가르침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풍이 확산된다면 우리 불교계는 청정 승가 정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의 사상을 ‘정혜쌍수(定慧雙修)’라는 말로 대변한다. 정과 혜는 동시에 닦아야 한다는 가르침인데, 마음의 번뇌가 사라지면 지혜가 동시에 드러난다는 말이다.

부처가 되려고 앉아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이 고요해지는 공부와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결국 번뇌가 바뀌면 바로 깨침이 된다는 뜻이다.

자, 이제 초심 본 강의로 들어가자. 먼저 ‘海東沙門 牧牛子 述’이라는 부분을 해석한다. 해동(海東)은 우리나라 즉 ‘고려국’을 말한다. 그리고 사문(沙門)이라는 말은, 인도말 ‘사마나(Sramana)’의 음역으로 말을 풀이하면 ‘근식(勤息)’이라는 뜻이다.

근수정혜(勤修定慧), 좋은 일은 부지런히 행하고 식제번뇌(息諸煩惱), 모든 악한 일은 쉰다. 이 말을 줄여 ‘근식’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사문이라는 의미는, 선정과 지혜를 닦아 모든 번뇌를 끊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일러 구도자라고 말한다.

‘목우자’는 이미 앞서 설명했다. 술(述)은 논술하였다는 의미로, 창작의 의미보다는 본래 있는 것을 현시대에 맞게 풀어놓았다는 겸손의 말이다.

지눌스님은 ‘초심’을, 부처님의 율장에 있는 말씀을 모본으로 하여 지은 것일 뿐 이제까지 없던 것을 새롭게 창작해 낸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술’이라고 했다.

“모든 가르침이 부처님으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창작이 될 수 있는가? 마땅히 구술(口述)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술(述)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서 ‘술’이라 적었던 옛 스님들의 뜻을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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