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

충북 보은 출신이면서 충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찬호(47) 시인의 ‘만년필’이 지난해 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됐다.

도서출판 작가는 시인과 평론가 등 162명을 대상으로 시부문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송 시인의 ‘만년필’이 미학적 집중성이 돋보였다는 평가와 함께 17회 추천을 받았다고 밝혔다.

‘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작품’은 도서출판 작가가 3년째 실시해온 것으로 올해 소설부문에선 공선옥(42)의 ‘명랑한 밤길’이 선정됐다. 작품집으로는 소설가 박민규의 ‘카스테라’(문학동네)가 19회 추천을 받았고, 김명인의 ‘파문’(문학과지성사)은 20회 추천을 받아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도서출판 작가는 추천작품을 모아 ‘2006 오늘의 시’와 ‘2006 오늘의 소설’을 출간했다.

만 년 필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한때,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나 구름을 걸어 두었다 이것으로 경매에 나오는 죽은 말대가리 눈화장을 해주는 미용사 일도 하였다

또 한때,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으로 공원묘지에 일을 얻어 비명을 읽어주거나, 비로소 가끔씩 때늦은 후회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가을날 오후 나는 눈썹 까만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면서, 해바라기 그 황금 원반에 새겨진 ‘파카’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빛나는 만년필 시대의 이름들을 추억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오래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지난 날 습작의 삶을 돌이켜본다 - 만년필은 백지의 벽에 머리를 짓찧는다 만년필은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가 오랜 불면의 밤을 밝힌다 - 이런 수사는 모두 고통스런 지난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혼자 뒹굴어다니는 이 잊혀진 필기구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상념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 -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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