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영의 디지털 컨버전스 (35)

오상영 / 충북SW산업협회 회장(청주대학교 교수)

매년 3월이면 대학 캠퍼스는 신입생의 설레는 마음이 곳곳에서 베어난다. 아마도 ‘입시 해방감’에서 오는 몸부림일 것이다. 그러나 한 주(週)가 술판으로 시작하고, 술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여 간혹 지나칠 정도이다. 이들이 지난 3년간 청춘예찬(靑春禮讚)을 읊으며 날선 검을 만들어왔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었다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젊은이에게 이보다 멋있는 수필이 또 있겠는가. 국민 누구에게나 한 번쯤 읽혀졌던 이 청춘예찬의 의미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급속히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해 신입생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것이 이치이다. 그렇지만 도둑이 제 자식에게는 도둑질을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비록 신입생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거듭 충고하고 싶다. 대학을 입학한 신입생의 기분을 이해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계획을 게을리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신입생 특권은 3월말이면 내려놔야 한다. 한 학기 내내 유흥에 휘말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보라. 졸업을 했지만 아직 도서관에서 나오지 못한 선배들의 고통이 얼마나 힘든가. 주중(週中)에 오직 공부를 강요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주중(酒中)에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언론에서 가끔 비치는 것과 같이 세계적인 대학의 학생과 한국 학생은 개인 자질ㆍ능력의 차이는 크지 않으며 다만 학교 분위기, 수업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학교의 분위기에 문제가 있는가. 며칠 전 학교를 가는 길에 빨간 프랑카드를 보았다. 총장실 점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학교 발전을 이루자는 교수님들의 호소였다.

신학기를 맞아 신입생들이 입학을 하고, 재학생 등교가 이루어질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우려스럽다. 논의의 본질을 떠나서 사용하는 문구의 수준을 보면 본질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수의 지위는 하늘을 찌를 듯 높다. 그런 무소불위의 사회적 파워 집단의 호소문인 ‘총장실 점거에 다 같이 동참하자’는 문구에 대해 청춘예찬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선생님들께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며칠 전 국회에서 홍모의원과 총리의 말싸움은 그야말로 난잡한 싸움이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수준이었다. 전문가는 전문가다워야 한다. 이러한 의식구조 속에서 어떻게 국정을 운운하며, 학생들에게 ‘식사 중에 토론하고 수업 얘기하는 스탠포드(미국) 대학생의 분위기’를 전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의 미래는 젊은 학생들에게 있다. 비록 새내기인 기분으로 잠시 질펀한 생활이었다고 해도 다시 정돈하자. 청춘의 피가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理想)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의 새가 우는 것이다. 보라, 청춘을!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