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관촉사 주지 태진스님 인터뷰

사는 일이 쓸쓸하고 절망스러울 때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산사의 정취에 젖어 들 수 있는 고요한 절집이 그리워진다.

천년의 역사 속에 알듯 모를 듯한 미소로 황산벌을 말없이 굽어보고 서있는 국내 최대석불인 은진미륵의 온화한 미소는 이곳 주지스님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은진미륵'으로 더 잘 알려진 관촉사(주지 태진스님)는 지난해 4월 부임해 관촉사의 주변 정비사업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스님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논산 제1경인 관촉사가 그동안 지역사회에 기여하지 못했던 것과 불자들에게도 모범적이지 못한 점 등을 지적하고 앞으로 관촉사를 대대적으로 정비해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적 공간으로 그리고 이 지역을 교화의 중심도량으로 우뚝세워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 반야산 인근 주변의 산림정비사업과 일주문 입구에 2000여평의 대규모 연꽃단지조성은 물론 팔각정을 만들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제공과 시민들에게 사찰을 아늑한 쉼터의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스님은 올해가 만으로 미륵보살입상 1000년째로 이를 기념하는 각종 법회와 다양한 프로그램과 문화 행사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면서 점차적으로 관촉사의 새로운 위상을 정립해 나갈것이라고 피력했다.

▶국내 최대의 미륵보살 우뚝

관촉사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반야 산의 기슭에 온화한 미소로 천년 세월동안 중생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은진미륵부처님은 높이 18.2m에 둘레 9.9m의 국내 최대의 석불미륵부처님이 우뚝 솟아있는 도량이다. 일주문 입구의 활짝핀 봄의 벚꽃 사이로 줄지어 걸어오는 관광객들과 관광버스에서 막 내리는 학생들의 행렬을 바라보니 논산 사람 누구나 어릴적 이곳으로 소풍와 미륵불의 웅장하고 기이한 모습에 기가 질렸던 기억들이 아스라이 떠 올릴 것이다.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국가지정보물 제218호)은 고려 광종 19년(967)에 착공해 38년 후인 목종9년(1006)에 조정의 명을 받은 혜명(該明)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언제 창건 되었는지는 정확한 자료는 없다.

그러나 영조 19년(1743)에 세워진 '관촉사사적비명'과 혜명대사와 동자승에 얽힌 전설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볼 수 있다.

고려 광종 19년 사제촌(寺梯村)에 사는 한 여인이 이곳 반야산 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응애 응애'하고 우는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소리 나는 곳을 따라가 가까이 가보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솟아오르며 아이울음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매우 놀란 여인은 즉시 집으로 돌아와 사위에게 이야기 했고 사위는 관가에, 관가는 조정에 보고했다. 어전 회를 소집한 광종은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것은 기필코 불상을 만들어 세우라는 하늘의 징조'라며 혜명대사에게 부처님을 조상(雕像)하라고 명했다.

명을 받은 혜명대사는 석공 수백 명의 힘을 모아 겨우 존상을 도량으로 옮길 수 있어으나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몰라 몹시 걱정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제 촌을 거닐다 동자가 흙을 쌓아 올리는 장면을 보고 큰 돌 하나를 세우고 흙을 그 주위에 쌓아 올린 후 다른 돌을 그 위에 올리고, 또 다시 흙을 쌓아 올린 후 돌을 그 위에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 후에 남은 돌을 맨 위에 올리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혜명 대사는 비로소 미륵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을 깨닫고 마침내 거대한 부처를 세웠다.

이렇듯 우리나라 제일의 석불로 평가되는 미륵보살은 미간의 옥호(玉毫)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춘다고 한다.

당시 송나라 명승(名僧) 지안(智眼)스님이 이곳에 찾아와 예배하고 '마치 촛불을 보는 것 같아 빛나는 미륵불이구나!'하고 감탄해 절 이름을 관촉사라 하였다 한다.

또한 관촉사에는 망곡루옆에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옛부터 내려오는 특이한 석문이 하나 있다. 자연 암반위에 직사각형 모양의 돌로 세운 것으로 한쪽 기둥에는 관촉사, 다른 쪽 기둥에는 해탈 문이라 적혀있다. 성인 남자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크기로 중문 역할을 하고 있어 세심(洗心)의 관문인 듯하다.

은진미륵과 일직선을 이루고 있는 미륵전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불상이 없다. 불상이 있어야 할 자리는 투명한 유리로 벽에 마감되어져 창문을 통해 온화한 은진미륵 부처님을 참견할 수 있다.

특히 미륵전 안 오른쪽에는 한국 경제의 초석을 다져 국민들의 ‘보릿고개’의 60∼70년대 힘든 역경을 극복하게한 고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여사의 존영도 모셔져 있다.

고려 초기의 소탈하고 투박한 건축 양식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높이 5.5m의 석등(보물 제232호)은 하대석과 상대석, 화사석을 모두 갖추고 있다. 또 화강암으로 건립된 고려 초기에 조성된 배례 석은 석탑아래 자리 잡은 연화 무늬의 장방형의 대리석으로 참배객들은 석등에 불을 밝히고 합장 배례를 통해 불심을 키우는데 사용된다.

▶영험·이적 가득한 천년사찰로

무엇보다도 태진 스님은 그동안 관촉사는 불사계획에 따라 대웅보전, 미륵전, 보재루, 명부전, 신검당 등 모두 당우들이 최근 10여년사이 중수 및 신축했으나 잘못된 부분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면서 올해 은진미륵 부처님을 비롯해 주변 석축공사 등이 대대적으로 보수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창건 이후 고려 조선 근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법맥이 이어진 관촉사는 이제는 기복신앙에서 탈피해 영험(靈驗)과 이적(異蹟)이 가득한 사찰로 신도와 시민들의 다함께 공감할 수 있는 눈높이에 맞는 각종 교육 및 문화프로그램을 개발해 앞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덧부쳤다.

이렇듯 말없이 천년의 세월을 지켜온 은진미륵부처님의 마음만큼이나 탁트인 주지스님의 선방에서 내려다보이는 드넓게 펼쳐진 봄의 들판이 한가롭게만 보인다.

태진(泰震)스님 약력
▶1956년 3월 31일(음) 충남 당진에서 출생
▶1986년 10월 공주 마곡사 진경스님을 은사로 출가
▶1988년 동국대학교 재단 사서차장
▶1991년 명주사 주지
▶1999년 서울 봉은사 총무
▶2002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2003년 대한불교조계종 감사국장, 사서국장
▶2004년 백년사 주지
▶2005년 4월 (현)관촉사 주지와 조계종 호법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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