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경 시인 첫시집 '빈터' 출간

배추 국을 끓였습니다/ 된장을 풀고 감자를 넣고/ 매운 고추를 다져넣고 배추 국을 끓였습니다/ 이른 아침/ 배추 국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식탁 위에 배추 국을 떠놓다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참으려고/ 씻어놓은 그릇을 자꾸 씻습니다/ 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은 딸아이가/ 배추 국 그릇 속으로 눈물을 뚝뚝 떨구며 웁니다/ 당신이 너무 좋아했던 배추 국이라서/ 누구도 먹지 못하고 울고 있습니다/ 버리지도 못하고 울고 있습니다// -<편지·1> 전문 시인은 2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더욱 깊게 다가오는 것은 배추 국을 같이 먹을 수도 또 편지를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등단 후 10년만에 첫 시집 ‘빈터’(문학마을사)를 출간한 이윤경 시인(53).시집 절반을 망부가(亡夫歌)로 채운 시인은 최근 ‘배추 국 시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5년간 투병생활을 했던 남편이 지난 2004년 위암으로 세상을 등진 후 병수발하느라 작품활동은 엄두도 못냈던 그녀가 전시라고는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남편 박석부씨를 위해 서예유작 전시회를 열고 남편을 기리며 쓴 시를 묶어 시집 출판기념회도 가졌다.지난 13일 조용히 준비한 전시회와 출판기념회에는 평소 그녀와 박씨를 아꼈던 지인 2백여명이 소리없이 찾아 자리를 함께 했다.줄곧 행·초서를 써온 고인 박씨는 힘든 투병생활 중에도 꾸준히 쓴 100여점의 작품을 지인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심신의 고통을 순화시키기 위해 어떤 날은 20여시간이나 붓을 잡았다는 이야기에서 누구도 마음이 젖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지난 전시는 남은 30여점을 모아 선보인 자리였다. 충북대 평생교육원 장학진 교수(서예 전담)는 박씨의 서체를 두고 ‘초여름 버드나무 가지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그 푸른 줄기처럼 뻗어가는 힘이 강하다’고 추억했다.자신의 시집 출간에 맞춰 남편을 기리며 유작전시회를 연 이씨에 대해서는 ‘몹시 고맙고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이씨의 시집 ‘빈터’는 그렇게 남편이 있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시집에는 죽음을 소재로 한 시들이 유독 많은데 시 ‘눈 퍼붓던 밤’에는 눈처럼 퍼붓는 슬픔이 차갑게 쌓인다.

당신이 떠나기 전/ 주먹 같은 눈이 퍼붓던 밤/ 간신히 일어나 앉은 당신에게/ 차마 눈밭으로 가지 말아달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삼월에 눈이 왜 오느냐고 중얼거리는/ 내 마음을 알고 있는지/ 눈 속 가득 눈물을 채우던 당신은/ 겨우 그 밤을 넘기고 떠났습니다/ -<눈 퍼붓던 밤> 중에서

그러나 누구나 사별의 아픔을 겪지 않는 사람이 없고,인생의 아픔과 절망과 고난과 장애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시인의 시 ‘누구든 강물처럼 가는 것이다’처럼 그렇게 부딪치면 돌아가고 가파르면 쏟아져 흐르고 둑이 높으면 기다리다 갈 것이다.

시인은 ‘누구든 강물처럼 길을 만들며 혼자 가는 것’이라며 자신의 아픔을 과장하지 않고 아픔을 품은 유연함으로 곡선의 삶을 받아들인다.도종환 시인은 이씨의 이러한 삶의 자세를 두고 작은 것 속에서 진정한 삶의 행복과 가치를 발견하는 ‘에돌아가는 곡선의 삶’이라고 평했다.

시집 ‘빈터’에는 하찮은 것,버림받은 것,보잘것 없는 것 조차도 따뜻하게 품어안으며 도리어 삶의 온기를 불어넣는 시가 가득하다.

그래서 시인은 ‘누구든 지나다 빈터라고/ 오줌을 갈기고 가래침을 뱉고 가지 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버려진 것에 대한 애정과 관심,작고 낮은 것에 대한 시인의 시선에서 슬픔마저 끌어안는 희망을 발견하는 기쁨이 시집 ‘빈터’에 있다.

이씨는 지난 96년 ‘문학공간’을 통해 등단했으며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충북지회 감사와 충북여성문인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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