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신화'를 완성할 결전의 날이 밝았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3일 오후 10시(이하 한국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월드컵경기장에서 2006 독일월드컵 본선 G조 조별리그 첫 경기로 아프리카의 복병 토고와 운명을 건 맞대결을 벌인다.

지난달 27일 전 국민의 염원을 부푼 가슴에 안고 장도에 오른 23인의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전지훈련과 독일내 베이스캠프 쾰른에서 모든 담금질을 소화하고 12일 오후 6시30분 '승리의 땅' 프랑크푸르트로 향한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한 판이다. 어떤 결전도 이보다 더 중요할 수 없는 일전이다.

월드컵 조별리그는 세 경기를 치르지만 첫 경기에서 사실상 팀의 사활이 좌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형언할 수 없는 결전의 무게가 그라운드를 짓누르는 승부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23인의 태극전사들에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가겠다"는 말로 출사표를 던졌다.

'아드보카트호의 심장' 박지성은 "첫 경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고 '캡틴' 이운재는 "그동안 부진했던 평가전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시간으로 자정이 가까워지는 결전의 시간.

서울시청앞 광장은 온통 붉은 물결로 물든다. 시청앞 뿐이 아니다. 한반도 전역에서 메아리친 붉은 함성이 이역만리 유럽 대륙의 관문 프랑크푸르트까지 전달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드보카트호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볼 수 없다. 더 이상 돌아봐서도 안된다. '월드컵의 바다'에서 망망대해를 헤쳐나갈 진군의 나팔은 이미 울렸다.

홈팀의 대우를 받고 결전을 치르는 한국은 빨강(상의)-하양(하의)-빨강(스타킹) 유니폼을 입는다. '4천만의 투혼'이 깃든 붉은 색 주 유니폼이다. 토고는 노랑-초록-하양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다.

아드보카트호는 프랑크푸르트 월드컵경기장에서 마지막 남은 공식 훈련을 한 차례 진행함으로써 결전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치게 된다. 결전지 숙소는 프랑크푸르트 시내 '아라벨라 쉐라톤 그랜드호텔 프랑크푸르트'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11일 레버쿠젠 '바이 아레나'에서 실시한 비공개 훈련을 통해 토고전의 전략 구상을 사실상 완성했다.

하지만 선발로 나설 '베스트 일레븐'은 경기 당일 아침에 짜겠다고 했다. 이미 머릿속에 작전도가 그려졌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태극전사들의 컨디션을 총체적으로 점검한 뒤 최정예 멤버를 내보내겠다는 복안이다.

태극호는 스리백(3-back)으로 토고의 위협적인 투톱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와 압델 카데르 쿠바자를 꽁꽁 묶고 중원에서 강인한 압박과 수적 우위로 경기의 흐름을 틀어쥔다는 전략이다.

'그라운드를 지배해야만 승리를 얻는다'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특명이 반드시 현실로 나타나야 할 순간이다.

스리백은 캐넌포를 장착한 막내 김진규가 중앙 왼쪽, 최고의 안정감을 자랑하는 김영철이 중앙, 팀내 최고참인 2002년의 전사 최진철이 중앙 오른쪽을 책임진다. 포백 라인의 바로 뒤에는 든든한 수문장 이운재가 버틴다.

키 포인트는 미드필더진에 있다. 포백(4-back)에서 좌우 사이드백을 맡았던 이영표와 송종국은 좌우 측면의 날개형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돼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게 된다.

송종국은 "사이드백 보다는 측면 미드필더로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에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이을용과 '아드보카트호 황태자' 이호가 각각 공격형,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아 격전의 중원을 누비게 된다.

스리톱(3-top)은 왼쪽 윙포워드 박지성, 중앙 원톱 조재진, 오른쪽 윙포워드 이천수로 출격한다.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날개로 변신하는 박지성의 돌파력은 변형 전략의 핵심이다. 박지성은 "내게 상대 수비수들이 몰린다면 다른 쪽에서 찬스가 날 것"이라며 토고의 수비진을 휘저을 것을 자신했다.

조재진은 "내 자신도 놀랄만큼 컨디션이 좋다"는 말로 출사표를 대신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말리전에서 보여준 고공 점프로 토고의 장신 수비수 다르 니봄베, 마사메소 창가이를 제공권에서 제압해내야 한다.

하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4-3-3 포메이션을 예비 카드로 남겨뒀다.

지난 1월 이후 13차례 평가전에서 연속 담금질해온 4-3-3 포메이션을 임기응변의 힘으로 비축해둔 것이다.

아드보카트호는 그동안 경기 도중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전환한 적은 있지만 그 반대의 예는 없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가 중대한 결전에서 어떤 카드를 내밀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오토 피스터 감독의 전격적인 사퇴로 흔들리는 토고는 급박한 시기에 전술적인 변화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토고 대표팀 내부는 혼란 그 자체다. 일단 코조비 마웨나 코치가 감독대행 자격으로 한국전에서 벤치에 앉는다.

아데바요르-쿠바자 투톱은 확정적이다.

측면 미드필더는 셰리프 투레 마망이 왼쪽, 야오 세나야와 토마스 도세비 중 한 명이 오른쪽을 맡는다. 중앙은 알렉시스 로마오와 야오 아지아워누가 지킬 것으로 보이지만 아지아워누 대신 쿠아미 아그보가 깜짝 출격하리라는 전망도 있다.

포백은 왼쪽부터 뤼도비크 아세모아사, 니봄베, 장 폴 아발로, 창가이가 늘어선다. 골문은 코시 아가사가 지킨다.

한국은 토고를 꺾고 1승을 올리는 순간 반세기에 걸쳐 점철돼온 고난의 월드컵 원정 도전사에 영광스러운 첫 승의 역사를 쓰게 된다.

1954년에 첫 출전한 스위스월드컵에서 헝가리에 0-9로 대패한 이후 무려 52년이 걸린 고난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스위스월드컵 당시 세계의 벽을 절감하며 2전 전패로 시작한 월드컵 도전사는 32년 만에 다시 본선에 오른 1986년 멕시코월드컵 첫 경기에서도 디에고 마라도나가 버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선전했지만 1-3으로 고배를 마시며 이어졌다. 멕시코월드컵 전적은 1무2패였다.

그리고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는 3전 전패로 참담한 결과를 받아들었고 199 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무적함대' 스페인과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했음에도 2무1패로 탈락해 짐을 꾸려야 했다.

가장 최근의 원정 월드컵인 1998년 프랑스대회에서도 네덜란드에 0-5로 참패하는 수모를 겪었고 최종 전적은 1무2패였다.

이전까지 5차례 원정 월드컵에서 전적은 4무10패였다. 아드보카트호는 아직 단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원정 승전가를 부를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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