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에 빠져있던 '종가' 잉글랜드가 '캡틴' 데이비드 베컴의 한 방에 깨어났다.

잉글랜드는 26일(이하 한국시간) 슈투트가르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독일월드컵축구 16강전에서 후반 15분 베컴의 천금같은 프리킥 결승골에 힘입어 남미의 난적 에콰도르를 1-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잉글랜드는 포르투갈-네덜란드전 승자와 7월2일 0시 겔젠키르헨에서 준결승 진출을 다툰다. 잉글랜드는 16강전의 유일한 유럽-남미 대결에서 승리해 40년 만에 꿈꾸는 월드컵 우승을 향해 한 발짝 전진했다.

마이클 오언의 부상으로 웨인 루니를 외롭게 원톱에 세운 스벤 예란 에릭손 잉글랜드 감독은 프랭크 램퍼드, 스티븐 제라드를 '2선 병기'로 놓고 마이클 캐릭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한 발 내려 중원을 커버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전반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초반엔 5만2천명을 수용하는 고트립 다임러 슈타디온의 80%를 점한 잉글랜드 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장면이 나왔다.

전반 12분 중앙 수비수 존 테리의 헤딩 미스로 문전에 쇄도한 에콰도르 간판 스트라이커 카를로스 테노리오의 발에 볼이 걸렸다.

테노리오는 페널티지역에 들어서는 순간 결정적인 오른발 슛을 때렸지만 애슐리 콜이 황급히 갖다댄 발에 맞은 볼은 크로스바를 강하게 튕기고 아웃됐다. 콜의 육탄 방어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실점을 허용할 상황이었다.

잉글랜드는 좀처럼 돌파구를 열지 못했다.

루니는 전방에서 고립됐고 제라드와 램퍼드의 중거리슛은 위력이 없었다. 베컴의 크로스도 번번이 수비수 발에 먼저 걸렸고 조 콜의 측면 돌파도 제대로 공간을 찾지 못했다.

에콰도르 골키퍼 크리스티안 모라는 볼을 잡아볼 기회조차 몇 번 없었다. 잉글랜드는 오히려 거친 플레이로 관중의 야유를 받았다.

기온 31℃의 무더위 속에 답답하게만 이어지던 흐름을 단번에 뒤바꾼 건 역시 베컴이었다.

왜 그의 킥 앞에 '컴퓨터'라는 말이 따라붙는 지 입증한 순간이었다.

후반 15분 램퍼드가 끌어낸 프리킥 찬스에서 베컴은 페널티지역 좌중간에 섰다.

전반에 한 번 찬스가 있었지만 각도가 너무 꺾여 포스트를 비켜간 걸 기억하는 베컴은 예리하게 눈으로 각을 재다가 오른발 인사이드로 볼을 감았다.

조준점은 가까운 쪽 골 포스트였다. 골키퍼 모라는 먼쪽 포스트 쪽에 치우쳐 있다 킥이 곡사포로 휘어오자 몸을 날렸지만 손 끝을 스친 볼은 왼쪽 포스트에 맞고 골문에 빨려들어갔다.

이 한 방으로 끝난 승부였다.

에콰도르는 후반 21분과 41분 잉글랜드 골키퍼 폴 로빈슨의 다이빙에 막힌 루이스 발렌시아의 두 차례 중거리 슛이 아쉬웠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후반 28분 루니의 기막힌 왼쪽 측면 돌파로 추가골 찬스를 잡은 잉글랜드는 램퍼드가 정면에서 어이없게 볼을 띄워버려 한 골차 승리에 만족해야 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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