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일 前 음성군의회 의장 아름다운 퇴진

70평생 16번 선거에 출마해 단 한번도 떨어져 본적이 없는 ‘선거불패’ 신화를 남긴 정치인의 아름다운 퇴진이 신선한 충격과 함께 화제가 되고 있다.화제의 주인공은 제4대 음성군의회 의장을 끝으로 45년 정치ㆍ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안병일씨(73).지금껏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좁게는 맹동면 발전을, 크게는 음성군 발전을 위해 뒤에서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안 의장은 은퇴를 앞둔 요즘 참 행복하단다. 자신만큼 복 많이 받고 많은 행운이 뒤 따른 은퇴자가 드문일이기 때문이다.여기에 주변으로부터 ‘자식농사 또한 잘지었다’는 말을 종종 듣기 때문이다. 5남1녀 모두 의사,교사,공무원,사업 등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16전16승 선거불패 신화를 이룬 것보다는 민심을 배반하지 않고 올바르게 일을 하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려웠다”는 안 전 의장을 만나 소감을 듣었다.뎶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요즘 심정은 어떠십니까. 신행정수도를 위한 동전모으기 행사에 참가한 모습.
“참 행복합니다. 나처럼 복많이 받고 많은 행운이 뒤 따른 사람은 드물것입니다.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잘해주고 봉사할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기간 공직과 정치생활을 해왔는데 뒤 돌아보면 ‘찰라’라고 생각됩니다.

70평생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인생을 선거를 통한 삶을 살아오면서 개인적으로는 성공적인 인생이 이었지만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참으로 미안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선거는 전쟁이죠.전쟁을 16번이나 치렀으니 얼마나 고생들이 많았겠어요.이제부터 가족들을 위해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퇴임후 지역봉사를 위해 살겠다고 듣었는데.

아직 무었을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다만 작게는 맹동면 발전과 크게는 음성군 발전을 위해 살아야 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우선 얼마전 마을발전과 주민을 위해 삶을 살아온 부모(고 안영호ㆍ장장성)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마을주민들이 세원준 보은송덕비 제막행사 때에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부모의 유지를 받들어 세운 영일(榮一)장학재단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데 노력할 생각입니다. 현재 1억원인 장학재단기금을 사제를 털어 더 많은 기금을 마련해 지역의 많은 인재를 육성할 계획입니다.지난달 말 고인이 된 부모의 보은송덕비를 세워준 마을주민들에게 다시한번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남은 인생 더욱 더 열심히 주민들에게 봉사하면서 살겠습니다.

-70평생 16번 선거에 출마해 16번 모두 승리한 ‘선거불패’신화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첫 선거는 27살때 였습니다. 음성맹동초,무극중, 청주공고, 청주대 상대를 졸업하고 1962년 고향에 돌아와 지금은 없어졌지만 4-H구락부 음성군 초대회장 선거에서 당선됐습니다.대학을 나온 젊은이가 농촌에 투신하는 일은 당시엔 흔치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몇년후 충북농촌지도자연합회 초대회장을 하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몸 담았습니다.

1970년 맹동농협 초대조합장에 선출된 것이 계기로 본격적인 선거의 길을 걷게 됐죠. 이후1990년까지 21년간 7선을 했어요.이 시절 조합원들과 힘을 합쳐 충북에서 가장 영세한 맹동농협을 자립할 수 있는 농협으로 육성했습니다. 집과 땅을 저당 잡히면서까지 참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낮에는 농가를 방문해 농사기술 등을 보급하고 밤에는 야학도 했고 심지어 농사기술을 배우기 위해 음성에서 청주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였어요.이같은 공로로 문화공보부의 향토문화공로상,상록수상,지역사회개발공로의 대통령표창및 기장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1991년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반자치제 부활로 음성군의원 선거에 출마 당선됐고 초대군의장에 뽑혔습니다.

-초대군의장을 역임한 뒤 도의원이나 군수 등에 도전하지 않고 충북도교육위원회에 진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학을 졸업할 당시 고등학교 정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지만 농촌계몽운동을 하다보니 교단에 설 기회가 없었어요.지방자치 경험을 살려 지방교육자치 실현에 기여하고 싶었고 실제 많은 일을 했습니다.이와함께 지역의 유능한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제4대 군의회를 이끌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각 읍ㆍ면을 대표한 군의원의 특수한 신분때문인지 지역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의견일치가 쉽지 않아 의견조율에 힘이 들었습니다.특히 지난 2004년 하반기 의장단 구성때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그러나 의원들의 협조로 무난히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제2선수촌유치 무산 문제로 성명서 발표와 함께 상경해 시위를 벌이면서 9만 음성군민의 저력을 보였던 일입니다.이같은 힘이 밑거름이 돼 혁신도시를 유치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칠순이 넘은 나이에 부족한 점이 많은 본인에게 제4대 후반기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겨준 동료 의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뎶70평생 공직과 정치생활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과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소감은

아쉬운 점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하지만 후회는 없어요.중요한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왔으니까요.떠나는 사람은 그림자를 남기지 말아야 하는 법이라는 말이 있지요.평범한 야인으로 살겠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고향의 발전을 바라보며 흐뭇해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 지길 빌면서 자연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70평생 16전 16승의 ‘선거불패’ 신화를 이룬 것보다 민심을 배반하지 않고 올바르게 일을 하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려웠다고 회고하고 있는 안병일 의장의 아름다운 퇴진에 박수를 보낸다.한편 안 의장은 조만간 자신의 삶을 그린 자선전도 계획하고 있다.

◆안병일 음성군의장은
-1934년 음성군 맹동면 봉현리 출생
-맹동초,무극중,청주기계공고,청주대 졸업
-음성군 맹동농협조합장 7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제1대ㆍ2대)
-음성군의회 초대의장
-충북도 교육위원회 부의장
-맹동라이온스클럽 초대회장
-음성군의회 제4대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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