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휴가 "싫어" 쉬는 휴가 "좋아"

생활 전반에 걸쳐 건강과 자기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웰빙'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여름 휴가도 이러한 추세변화를 거스르지는 못하고 있다.

1995년 결혼한 김모(40)씨는 결혼 이후 매년 휴가철에 식구들과 함께 전국 각지의 여행지를 찾았으며 2002년에는 처음으로 해외에서 휴가를 보냈다.

김씨는 그러나 올해에는 집 근처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어디를 특별히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과 문화시설 등지에서 책도 읽고 연극이나 콘서트를 관람하기로 한 것.

그는 "회사에서 휴가비도 지원받는 등 휴가를 가기 위한 여건은 충분히 마련됐다"면서도 "피서지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매우 소모적이라 생각돼 올해 휴가는 재충전을 위한 문화생활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0년째 경찰에 몸담고 있는 이모(49)씨도 올해 여름휴가를 '웰빙형'으로 보내기로 했다.

강력계 형사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각종 사건과 비상대기 등으로 인해 지난해까지 7년 간 단 한번도 휴가를 떠나지 못했기 때문에 모처럼 만의 기회라 생각한 이씨는 지친 몸과 정신을 추스르기 위해 다음달 6일까지의 휴가 기간에 극장과 연극 무대 등을 찾기로 했다.

이씨는 "7년 만의 휴가라 뭔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면서 "날도 더운 데다 피서지에 가면 짜증만 늘어나는 것이 예사라 몸과 마음 모두 푹 쉴 수 있는 계획을 짰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먹고 마시는' 휴가가 아닌 재충전을 위한 휴가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경남지역 문화시설들은 이러한 '틈새 고객' 잡기에 잇따라 나섰다.

창원 성산아트홀은 다음달 4일부터 이틀 간 러시아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이스발레단 초청공연을 개최한다.

1천700석 규모의 대극장에서 진행되는 이 공연은 '온 가족이 함께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또 개봉 4일 만인 30일까지 전국에서 270만명 가량이 관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영화 '괴물'과 일본의 군국주의적 야욕을 다룬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등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경남도 내 각 영화관에서 상영되면서 휴가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창원시내 한 영화관 관계자는 "휴가철을 맞아 대형 국산 영화가 잇따라 개봉되면서 최근 들어 평일 예매건 수가 평소보다 20% 가량 증가했다"면서 "특히 심야나 오전 등 '사각 시간대'에도 좌석이 없을 정도로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회사 차원에서 휴가를 떠나는 직원들에게 독서를 권장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29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단체 여름휴가를 떠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임·직원에게 '읽을 만한 책' 목록을 추천했다.

이 회사는 이달 중순 사내 전산망을 통해 독서와 함께 여유롭고 알찬 휴가를 보내라는 의미로 12권의 책을 게재했다.

이 목록에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웨인 다이어 등), '맑고 향기롭게'(법정스님) 등 삶과 발상의 전환에 대한 책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이 책들을 읽으려는 직원들을 위해 조선소 내 문헌정보센터에서 무료로 도서대출 서비스도 제공했다.

거제조선소 사원 최모(35)씨는 "이제껏 휴가철에는 고향이나 유원지에 들러 놀이를 즐겨왔다"면서 "'노는 휴가'는 지나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올해에는 책도 읽고 맛있는 것도 찾아다니며 먹는 등 철저히 '쉬는 휴가'로 보내기로 했다"고 전했다.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김문겸 교수는 "대중문화가 보편화 되면서 개인의 특수한 욕구가 대중문화 보편성 속에 흡수 편입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주 5일제가 시행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표현되기 시작했다"면서 "이러한 추세가 보편적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여가에 대해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삶의 양식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휴가철 일반인 수련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 합천 해인사 관계자도 "예전에 비해 직장인들의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휴가철을 맞아 수련 코스에 등록하는 직장인 수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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