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사람 합수지정곡류지역 특히 좋아해

미호천 100리를 가다

(6) 미호천 수계와 구석기 문화

▲ 금강수계 구석기 유적 분포도를 나타내고 있는 지도이다. 유적지가 미호천과 대청호(수몰전) 수계에 집중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적지 지도= 우종윤 충북대 박물관 학예실장 논문. ‘구석기 문화’(이융조 저), ‘금강유역사 연구’(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회 저) 등 구석기 관련 연구논문을 보면 금강수계(401㎞)에서는 현재까지 30여곳의 구석기 문화층이 발굴됐다.이는 전국 구석기 유적지와 비교할 경우 대단히 높은 밀집도로,미호천,대청호 등 일부 수계에는 마치 포도송이처럼 유적지가 분포하고 있다.선사고고학상 구서기 유적지는 ‘한데유적’(Open Site)과 ‘동굴유적’(Cave Site)으로 분류되고 있다. ‘한데유적’은 글자 그대로 평지나 구릉에 분포하는 유적을, ‘동굴유적’은 동굴을 문화층으로 갖고 있는 유지를을 말한다.금강수계 한데유적으로는 청주 봉명동, 율량동, 하복대, 복대동, 소로리, 진천 장관리, 송두리, 상신리, 신정리, 옥천 막지리, 석호리 공주 석장리 등 30여곳, 동굴유적은 청원 두루봉, 작은용굴, 큰용굴 등이 존재하고 있다.▶미호천 수계가 가장 성과가 크다= 금강수계 유적지중 미호천 수계에 속한 청원 두루봉동굴, 흥수굴, 소로리 유적지 등이 발굴 성과가 가장 크고 학문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청원 두루봉 동굴에서는 멸종됐거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쌍코뿔이, 동굴곰, 하이에나, 큰원숭이, 사자, 옛코끼리 등 당시 동물화석이 무더기로 출토됐다.두루봉 지역에 속한 흥수굴에서는 꽃가루를 뿌리는 등 매장문화 흔적이 뚜렷히 남아 있는 가운데 약4만년전 사람인 ‘흥수아이’ 뼈화석이 매우 양호한 상태로 발굴됐다 소로리 유적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1만5천년전) 고대벼가 출토, 영국 BBC 인터넷판이 이를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 이 볍씨는 유전학상 야생벼와 재배벼의 중간단계인 ‘순화벼’로 밝혀지고 있다.공주 석장리 유적은 미호천이 아닌 금강본류 수계에 속하나 우리나라 구석기 연구의 신기원을 연 곳으로, 3만년전 후기 구석기 도구유물이 다양한 형태로 발굴됐다. ▲ 두루봉 동굴과 흥수굴에서 발굴된 동굴곰,흥수아이 뼈 화석 모습으로 충북대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동굴곰은 현재 한반도에 서식하지 않고,흥수아이는 약 4만년전 사람으로 추정됐다.
▶왜 동굴에서 화석이 많이 나오나= 두루봉, 흥수굴 등의 유적에서 보듯 각종 동물화석은 석회암 동굴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됐다. 학자들은 이같은 이유로 동굴토양이 알카리성인 점과 석회암 용해작용을 들고 있다.

두루봉 동굴 등을 발굴한 이융조 교수(충북대)는 “석회암 동굴은 알카리성 토양성분을 나타내기 때문에 유물 부식이 훨씬 덜 하다”며 “이 때문에 동물화석이 온전한 형태로 출토됐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물에 녹은 석회암(일명 석회마루)은 켜켜히 쌓이면서 콘크리트 역할을 하고 이것이 유물 보존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두루봉 동굴의 경우 6개의 켜층이 80㎝ 두께로 쌓여 있었다”고 밝혔다.

▶미호천 14개, 대청호 12개 유적 분포= 30여곳의 금강수계 구석기 유적을 지도에 옮겨 본 결과, 미호천 수계 진천~청원~청주수계에 14개, 보청천 옥천~청원수계(수몰전 대청호)에 12개, 대전수계 6개 등으로, 미호천 수계에 구석기 문화층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상ㆍ하류가 아닌 중류지역에 분포하고 ▶그것도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류지점과 곡류지형에 주로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지역 선사고고학자들은 ▶상류로 산악지대일 뿐만 아니라 물살이 빨라 사람 살기에 적당하지 않고 ▶하류 잦은 범람 등으로 주거지가 상시 위험에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교수는 “두물머리 지역은 평지가 발달하고 또 두 수계를 채집경제 배후지로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며 “곡류지점은 전망이 좋고 또 유속이 느리면서 물고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하류의 경우 퇴적층이 발달됐기 때문에 유적지가 많이 멸실될 수도 있다”며 “따라서 앞으로의 발굴진행 결과에 따라 수정된 이론이 나올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결론으로 “미호천 수계는 선사문화 발생의 배후지 역할을 했고 또 중요한 교통로이자 어로, 채집경제의 젖줄 역할을 했다”며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내륙으로 통하는 문화전파 대루트였다“고 밝혔다.

▶지역에 특화된 구석기 박물관이 없다= 그러나 미호천 일대가 전국 최대 구석기 유적지가 분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미호천 지역에는 특화된 구석기 전시관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국립청주박물관 지역 구석기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나 내용이 다소 빈약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청주 백제유물전시관에는 지역 구석기 유물이 전시돼 있지 않다.

따라서 미호천 일대에 특화된 구석기 전문박물관을 건립, 이를 지역 선사교육의 공간과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청원 두루봉 동굴 등에서 동물화석이 많이 나온 만큼 이를 기초로 특화된 구석기 동물화석 박물관을 건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충북대박물관이 구석기인과 동물화석을 많이 전시해 놓고 있으나 학내에 위치하면서 접근성이 떨어지고 또 일반인들은 이의 존재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전국에는 공주와 연천 등 단 2곳의 구석기 전문 박물관만 존재, 특화된 미호천 구석기전문 박물관 건립 필요성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기획취재팀

▶당시 구석기인 지금사람 조상일까

학자마다 견해가 다소 다르나 대략 한반도 전기 구석기는 70만년~5만년, 중기는 5만년~3만5천년, 후기는 3만5천년~1만년전 등으로 나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부 학자는 “구석기인은 지금 사람의 조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그 근거로 ▶한반도는 구석기시대 때 4차례 빙하기를 겪었고 ▶구석기인은 이동 생활을 했으며 ▶또 언어와 문화를 갖지 못해 ‘민족’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빙하기를 겪지 않았고 또 농경을 위해 정착생활을 시작한 신석기인을 지금 사람의 직접 조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융조 교수는 후기구석기의 대표적인 유물이 좀돌날몸돌이 신석기 지층에서 출토되고 있는 점을 들어, 후기 구석기인을 지금 한반도 사람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교수는 “유물학적으로 보면 좀돌날몸돌을 만든 사람이 후기구석기와 신석기의 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따라서 3~1만년전의 구석기인은 지금 한반도 사람의 직접 조상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제는 왜 한국 구석기 문화를 왜곡했나

1933년 일제 만몽학술단은 두만강 근처인 동관진에서 구석기 시대의 포유동물 화석과 타제석기를 발굴했다. 그럼에도 불구, 당시 일제는 한반도 구석기 문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대해서는 황국사관과 마지막 빙하기 등 두 가지 설이 존재하고 있다. 황국사관은 일본 천황이 열도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일제는 천황 이전에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마지막 빙하기설은 1만5천년전 빙하기때 고아시아인이 베링해를 통해 아메리카로 이주했고, 이때 중국대륙 사람이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일본으로 들어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인이 조상으로 여기고 있는 아이누족이다.

그러나 이 설은 작위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 국제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기획취재팀장 = 조혁연 ▶팀원= 정문섭,박상준, 한기현,서인석,홍종윤,노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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