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충북 청원군 문의면 소전 벌랏마을

바람이 실어오는 맑은 공기가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가 수줍은 듯 하늘거리는 마을길을 지나 연못에 다다르면 다슬기,올챙이,도롱뇽 등 다양한 수생동식물이 있는 그 곳,벌랏마을. 과연 오지(奧地)라고 할 수 있을까.오지라는 말이 갖는 척박하고 황폐하며 비문명적인 이미지를 이 마을에서 느낄수 있을까. 청원문 문의면 소전리 벌랏마을에 들어서면 이런 의문에 사로잡힌다.문의에서 소전리로 가는 한적한 코스에 들어서면서 부터 자동차 핸들이 왔다갔다 할만큼 이국적인 풍광이 눈길을 사로잡고 마치 어머니 품속처럼 아늑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시간이 정지된 여유로움을 준다.문화와 오지가 대칭적 개념이라면 벌랏마을은 분명 오지일수 없다. 수백년간 내려온 우리 조상들의 놀라운 한지공예기술이 면면이 흘러내려온 곳이 어찌 오지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마을에 가면 도시인들은 무장해제된다.시간으로부터,각종 소음으로 부터 그리고 휴대폰으로 부터.그래서 때로 도시를 탈출하려는 우리에게 그곳은 분명 오지같은 마을이다.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대청호로 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다.청원벌랏한지마을은 코스부터 기분을 맑고 상쾌하게 한다.문의면에서 예전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방향으로 가다보면 보은군 회남면과 소전리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길로 따라가면 이보다 더 나은 드라이브 코스가 있을까 싶다.그만큼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승용차 좌측편에는 농촌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거나 낮설지만 소박한 들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손짓하고 우측 차창밖에는 7월 장마비로 불어난 대청호의 물결이 무심히 흘러간다.소전리 2구를 지나쳐 고개 금바위 양편엔 돌탑이 길목에 서있다. 그러고 보면 소전리 주변엔 유난히 많은 돌탑이 눈에 띤다.마을입구엔 ‘벌랏’과 ‘자연생태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마을의 환경을 상징하고 있다. 벌랏마을을 찾은 어린이들이 한지제작과정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왜 하필 ‘벌랏마을’일까. 마을을 소개하는 리플렛에는 대청댐 건설로 인한 수몰이 있기 전에 금강의 벌랏나루가 있었던 것이 현재의 벌랏마을이라는 명칭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간단히 적혀있다.

문의면 남쪽끝에 위치한 작은 산촌마을인 벌랏마을은 400여년전 임진왜란 당시 난리를 피해 들어와 화전을 일구면서 정착한 사람들이 일구어놓은 마을로 알려졌다.

샘봉산 아래 작은 분지로 형성된 탓에 논이 워낙 적어 주로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어 팔았으며 해방이후 잠업으로 많은 소득을 올렸으나 중국의 값싼제품이 수입되면서 한때 명맥이 끊어졌다.

그러나 요즘엔 학생들과 도시인들을 위한 한지공예체험마을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지를 팔던 마을이 한지를 제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체험마을로 바뀐것이다.

아예 마을 초입에 45평 규모의 단층으로 한지체험관을 마련했다. 체험관 안에는 한지제작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그렇게 만든 한지로 공예작품을 만들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뜻깊은 추억을 안겨준다.

이때문에 농림부등이 공동발간해 전국에 배포함 농산어촌 체험여행 200선에 벌랏마을이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인들이 벌랏마을에서 인상깊게 느끼는 것은 ‘원초적인 시골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는 점이다.

마을을 소개하는 리플렛에 멋드러지게 쓰여진 "바람이 실어오는 맑은 공기가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가 수줍은듯 하늘거리는 마을길을 지나 연못에 다다르면 다슬기, 올챙이, 도롱뇽등 다양한 수생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는 소개는 괜한 빈말이 아니다.

물맛이 다르고 공기의 맛이 다르고 하늘의 빛깔이 틀리니 자연생태계도 온전히 보존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마을 이곳저곳에서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뿐인가. 대문이 훤히 열린 농가를 슬쩍 들여다보면 우리네 농촌의 살림살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켜켜히 쌓아놓은 장작이며 외양간 옆에 가지런히 놓아둔 쇠스랑, 괭이, 도리깨등 농기구가 보이고 마당에는 야생화가 흐트러지게 피어있다.

여기에 박물관에나 있음직한 낡은 소여물통에는 짚과 콩을 삶아놓은 여물이 가득하다. 온순한 황소는 이방인을 보고도 큰 눈만 껌뻑이며 바라본다.

또 마을회관앞 풍경도 정감있다. 샘봉산자락에서 내려온듯한 샘물이 나그네의 목젖을 시원하게 적시고 연못인듯 풀장인듯 만들어놓은 물놀이장에는 멀리서 놀러온 개구장이들이 옷입은채 물장구치고 있다.

"시간에 쫓기듯 바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자유를 찾을때 망설이지 말고 저희 마을로 오세요. 너른 자연의 품처럼 두 팔 벌려 맞이하겠습니다"

10여년전 꽃처럼 화사한 각시와 함께 벌랏마을에 터를 잡은 40대 초반의 예술가는 이렇게 유혹한다. 그러나 한번 온 사람들은 그말을 가슴으로 느낀다. / 기획취재팀

전통방식 그대로 한지체험장 인기

좁은 산길을 지나 청주에서 1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청원 소전리 벌랏 한지마을.한지 체험관이 개관된 때는 2006년 2월.실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지마을이지만 체험관을 만든건 불과 7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10년전쯤 종이가 좋아 이곳으로 온 이종국씨(화가)는 "이곳의 한지 얘기를 듣고 무작정 오게 됐다"며 "종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좋은 느낌으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한지 만드는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라며 "모르고 왔으니까 했지 알고 왔다면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종이 제작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금 이곳에 세워진 한지 체험관은 2005년 청원군에서 지정한 테마마을로 지정되면서 기반조성을 하고 현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한지 체험관은 한지 만들기 체험방과 공예방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벌랏마을 심기환 이장을 중심으로 한지 만들기 전수자 4명이 한지 만들기 체험방에서 한지 만들기를 담당하고 이종국씨는 공예방에서 한지로 부채만들기 등 학생들에게 체험행사를 돕고 있다.

한지는 용도에 따라 그 질과 호칭이 다른데 창호지, 복사지, 화선지, 연하장 청첩장으로 쓰이는 태지가 있다. 이곳 한지마을은 한지의 생산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통방식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다. 왜냐하면 종이 탄생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재료 하나하나 직접 심고 삶고 불리고 또 삶고…. 이 과정을 수백번 거쳐 탄생한것이 벌랏 한지마을의 자랑인 한지인 것이다.

입소문으로 또 매스컴으로 하나둘씩 알려진 벌랏 한지마을은 전국 각지에서 체험을 위해 방문하고 있다.

심기환 이장은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마을 들어오는 길이 좁아서 큰 차들이 드나들기 힘들지만 전국에서 찾아오는 체험객들에게 한지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알리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열심히 발전시키는 중"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장 = 박상준 제2사회부장 ▶팀원 = 노승혁(사진),이지효,이보환,이병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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