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자 수필가 김애자씨

▲ 수필가 김애자씨.

문명으로부터 벗어나면 삶의 여백이 넉넉해진다. 거실 소파에 앉아 종일 앞산과 마주하여도 좋고, 군불로 달구어진 아랫목에 앉아 뜨개질을 하면서 얼음장 밑에서 두런거리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심신이 그럴 수 없이 편안하다. -<立春大吉>중에서

작가는 겨울 한철 조용한 칩거를 통해 겨울철 한유(閑裕)를 즐기고 있었다.
충주시 엄청면 추평저수지를 끼고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과 제천시 백운면 산자락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작가가 살고 있는 수랫골에 다다른다.

물이 내려온다해서 이름 붙여진 이곳은 일제시대, '술에'라는 말이 잘못 해석돼 주동이 됐다고 한다.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주동마을. 산 밑에 소곳이 엎드려 자리잡은 그림 같은 집에 수필가 김애자씨(63)가 살고 있다.

수필 '방하착(放下着)'으로 충북여성문인협회 제1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를 12일 수랫골에서 만났다.

'한결같은 속도의 흐름에 따라 오고가는 생명의 본연이 어찌 그리도 속절없는지 모르겠다… 버리고 내려놓음으로 안식에 든 대지에 발을 딛고 섰으면 생명 있는 것들의 덧없는 종말도 당연한 섭리요, 고요한 잠임을 깨닫는다'

수필 '방하착' 일부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교수(중앙대)는 '방하착'에 대해 "감각성과 비유를 적당히 배합하는 기교를 살린 문장을 비롯해 연륜과 사색이 어우러진 축적된 문학적 내공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오랜 투병생활로 몸에 눈만 걸려있었던 게 팔년전인데 자연 속에 살며 이제는 이렇게 살도 오르고 건강해졌어요."

시골에 들어와 자연을 누리며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졌다는 작가는 그 풍요로움이 바로 땅에 내려놓고 정착하며 얻은 문학적 내공이라고 귀띔했다. 자연으로 돌아오면 스스로 정화된다는 깨달음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겨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가랑잎도 부서진 수척한 땅에서 연약하게 피어나는 현호색과 앵초, 괭이밥과 황매, 청매의 피고짐을 목격해야 했다. 가을 산국을 끝으로 꽃가꾸기를 접으면 김장을 준비하고 메주를 쒀 들보에 메다는 일로 일년을 마무리 했다. 놓아야 비로소 풍요로울 수 있음을 깨닫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별들이 쏟아지는 밤이면 집에서 멀찍이 산책을 나가요. 불꺼진 마을, 그 사이로 보이는 내 서재의 불빛을 보고 존재감을 확인하죠."

사실 작가는 올해 초에도 수필 '立春大吉'로 격월간 '에세이스트'가 선정한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했다. 지난 겨울 이맘때 써 놓은 '立春大吉' 역시 삶의 편린 일부를 내어놓은 작품으로 방하착과 더불어 작가의 삶 면면을 엿볼 수 있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두메에서 문명의 삶과 조우하는 방법은 활자를 통해서다. 지난해말 을유문화사는 작가의 '눈길'을 '한국의 명수필2-수필에 길을 묻다'에 수록했다. 그리고 수필과비평사는 2년전부터 연재하고 있는 그녀의 '수랫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내년께 한 권의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원시의 밤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새벽이면 활자속에 들어가 자신을 완전히 잊게 된다는 작가는 예술가들이 말하는 '무아'의 뜻을 이해할 것도 같다고 했다. "어떤 기도도 그런 심매에 들지는 못할 거에요"

무심하게 글을 쓰다보면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글을 만나게 된다는 수필가 김애자씨. 자신의 글과 남의 글을 피해가며 문장에 성실하고 싶다는 그는 군불로 달구어진 서재 아랫목에서 오늘도 생의 대지를 품고 '방하착'을 연습한다.

# 수필가 김애자

충주에서 태어났다. 1991년 월간수필문학에 '공사판 여인들'이 당선되며 문단에 들어섰다. 한국수필문학 우수상(1997), 충북수필문학상(!998), 신곡문학상(2004)을 수상했으며 저서로 '달의 서곡'과 '숨은 촉', '미완의 집'이 있다. 충북여성문인협회의 제1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시상식은 19일 오후 6시30분 사직동 거구장 3층 문학공간에서 충북여성문학 11집 출판기념회와 함께 열린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