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청주에서는 작지만 의미있는 행사 하나가 치러지고 있다. 2000 여름 씨네오딧세이 시민영화감상회 「다큐_네모난 현실」이 다음달 26일까지 열리는 것.

개관한지 얼마 되지 않아 택시기사들 조차 그 위치를 잘 모르는 서부종합사회복지관(관장 정은경)에서 지난 15일 처음 열린 영화회는 실로 「성황」이었다.

당시 복지관에 자원봉사를 하러 온 고등학생들이 포함됐다고는 하나 총 참석인원 80여명, 토론참석인원 30여명이란 숫자는 초대손님으로 온 시나리오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연출가이며 「세계영화기행」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조재홍씨를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극영화에 비해 처참할 정도로 떨어지는 관객동원력을 감안할 때 이 정도면 「대박」이라는 것이 조씨의 표현이었으니까.

이날 임꺽정과도 같은 외양에 곱슬머리를 질끈 묶은 모습으로 눈길을 끈 조재홍씨는 자유분방한 유머로 청중들을 즐겁게해가며 이야기를 진행해나갔다.

성장과정에서 자주 접하게된 다큐에서 발견한 「재미」 때문에 다큐작업을 하게됐다는 그는 다큐를 상영하는 행사장을 다니다보면 화가 날때가 많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다큐가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을 갖고있거나, 다큐에 관심있는 사람들조차 일종의 엄숙주의에 사로잡혀있다는 것.

지금은 다소 상황이 호전됐지만 품은 많이 들면서 돈도 잘 되지않는 다큐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를 「다큐의 재미」와 삶을 사는데 주는 「도움」이라고 밝힌 그는 현대사의 영향을 받아 너무 주제지향적인 우리 다큐의 현실이 빨리 개선됐으면 한다는 희망을 강하게 내비치면서 말미에 인도의 이야기 치료사 이야기를 덧붙였다.

즉 사람의 몸을 다스리는 일체의 현대의학과 병행해서 이루어지는 인도의 이야기 치료사처럼 다큐와 극영화를 보는 것은 일종의 마음의 치료행위인데, 극영화로 치료될수 없는 부분을 다큐가 치유해줄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점심도 거른채 진지하게 두시간 가까이 열변을 토하던 그는 뒤늦은 저녁식사자리에서 한가지 제안을 했다. 7주로 예정된 이번 다큐감상회가 성공적으로 끝나기를 바란다면서 만일 도중에 행사에 차질이 우려된다거나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자신에게 SOS를 쳐달라는 것. 행사의 성공을 위한 모종의 「특단의 조치」를 함께 강구해보자는 것이었다.

글쎄 그의 우려대로 긴급타전을 보내게되는 상황이 오게될지도 모르겠다. 가뜩이나 다큐에 대한 거리감이 만연한 가운데, 그의 표현을 빌자면 「쌍팔년도 방식인」「고리타분한」 주제지향적 작품들이 줄줄이 늘어서있는 작품목록은 그같은 우려를 강하게 시사하고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전망을 잠시 접어놓자면 이날의 행사는 참석자들에게 뿌듯한 만족감을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상업적 극영화의 일방통행적 영화문화에 의미있는 견제와 방향제시를 하기위해 나선 일단의 젊은이들과, 그들의 의지를 한껏 격려하려는 현장의 영화인, 거기에 의미있는 행사라는 이유로 에어컨 팍팍 틀어주며 지원한 서부종합사회복지관까지, 이들이 만들어내는 열기만은 한여름 더위도 무색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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