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공 금제품·'武人石像' 등이 그 증거

민병훈 청주박물관장 특강

실크로드 종점이 중국 당나라 장안(長安)이었던 것은 맞으나 그 문화적인 지선(支線)은 신라 경주까지 연결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실크로드 이전의 고대 신라는 이른바 스텝루트를 통해 스키타이계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립 청주박물관은 얼마전 민병훈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 팀장을 초청, '실크로드와 고대 한국문화' 주제의 제 5기 박물관 연구과정 강의를 가졌다. 민 팀장은 이 강의 직후인 이달 초순 신임 청주박물관장에 임명됐다.

이 자리에서 민 관장은 "당시 실크로드 종점이 중국 장안이었던 것은 맞으나 그 문화적인 지선은 경주까지 연결, 고대 신라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 밝혔다.

그는 그 근거로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제팔찌와 구갑금수문은배(龜甲禽獸文銀杯) ▶감은사탑 금동사리함의 서역풍 사천왕상 ▶사천왕사 출토 소조 사천왕정조상(四天王浮彫像) ▶원성왕·헌덕왕·흥덕왕 묘의 무인석상(武人石像) 등을 들었다.

민 관장은 "이 시기의 구슬에는 서역인의 얼굴이 들어가 있고 장식보검은 서역지역의 대표적인 세공기술인 누금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며 "또 각종 무인석상 역시 하나같이 심목고비(深目高卑·들어간 눈 높은 코) 모습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림참조〉

그러나 당시 신라는 실크로드를 통해 문물을 일방적으로 수입한 것이 아닌, 수출도 한 것으로 보겨지고 있다.

민 관장은 "사마르칸드 궁전벽화, 당나라 장안의 장회태자묘, 돈황벽화에는 신라인의 조공 모습과 사신이 등장한다" 며 "따라서 당시 신라는 실크로드를 통해 한 방향이 아닌 쌍방향 문화교류를 했음을 알 수 있다" 고 말했다.

한편 고대 신라의 경우 실크로드 이전에는 이른바 스텝루트를 통해 북아시아 스키타이계 문화를 계승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 근거로는 이른바 마립간 시기(4~6세기)에 축조된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 제시됐다.

적석목곽분은 말 그대로 목곽 위에 잔돌을 많이 얹어 놓은 모습으로, 신라금관은 이 시기에 유일하게 출토되고 이후로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민 관장은 "당시 북방문화 성격을 지닌 외래집단이 경주에 강력한 뿌리를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후 중앙권력이 마립간에서 왕으로 강화되면서 토착민이 금관을 만든 외래집단을 축출한 것으로 보인다" 고 밝혔다.

그러나 고대 신라는 실크로드, 스텝로드 외에 해로를 통해 중국, 동남아시아, 서아시아 등과 인적, 물적 교류를 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는 "도작문화 남방전래설, 한국인의 남방계적 체질요소 등은 모두 남해무역 루트와 관련된 것 들"이라며 "최근에는 불교의 남방전래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상을 종합한 민 관장의 견해는 ▶고대 신라는 내륙지향적이었기 때문에 실크로드를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스텝루트는 마립간 시기에만 한시적으로 경주로 이어졌으며 ▶남해루트는 실크로드와 병용됐다 등으로 귀결되고 있다.

▶실크로드

비단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방에서는 중국산 비단이 대표적으로 전해졌고, 서방에서는 보석·옥·직물 외에 이슬람교 등도 이 길을 통하여 동아시아에 전해졌다.

통상로에는 타클라마칸사막의 북변을 통과하는 서역북도(西域北道)와, 남변을 경유하는 서역남도(西域南道)가 있으나 돈황에서 합해져 황하 유역의 장안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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