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청주공단지점 이응걸지점장

# 일류 은행도 포기한 곳에 개점

지난해 1월 농협청주공단지점에 부임한 이응걸(46)지점장은 농협 충북지역본부에 한장의 보고서를 올렸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성장 가능성을 찾기 힘들고, 흑자경영이 어려우니 농협조직 전체의 발전전략를 고려할 때 점포폐쇄가 바람직하는 게 골자였다.

신임 지점장의 첫 보고서가 이렇게 부정적이니 괘씸한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 고객 만족 서비스 증대를 위해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농협 청주공단지점 직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이응걸지점장 왼쪽에서 다섯번째) / 김용수

충북지역 25개 지정지부중 최하위를 맴돌던 공단지점은 애초부터 개점 자체가 부적합하다는게 내부 중론으로,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니 그래도 한 번 최선을 다해보라"고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당초 이곳에는 청주산업단지 입주업체 금융지원 서비스를 위해 지역은행이었던 충북은행에 이어 조흥은행이 그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었다. 그러던중 2004년 2월 조흥은행은 점포를 폐쇄했다. 수익성을 고려할 때 당시 조흥은행으로선 당연한 철수였다.

이후 충북도와 청주산업단지관리공단으로부터 농협을 향한 러브콜이 이어졌다.

"200개 업체 약 3만 여명의 근로자가 7조원의 제품을 만들어 충북지역 생산의 약 80%를 차지하는 중부권 최대의 산업단지인 이곳에 금융기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농협이 아무리 순수 토종은행으로 지역주민의 편의를 제공한다지만 일류 은행이 두손들고 포기한 곳에 희생타로 들어서라니 참으로 암담했다. 농협중앙회의 현지 실사 결과도 부정적이었다.

그런곳에 농협 충북본부는 승부수를 던졌다. 5년내 흑자경영 계획서를 마련, 중앙회를 설득해 2004년 5월17일 농협청주공단지점이 탄생했다.

# "열심히 뛰니까 길 보이더라구요"

초대 윤태선 지점장(현 농협괴산군지부장)을 중심으로 열심히 일했다. 허나 막상 개점하고나니 상황은 달랐다.

산업단지내에 즐비한 공장들이 고객이 되어주지않을까하는 기대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기존 거래은행이 있다보니 농협공단지점과 거래하는 공장은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게다가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주택가는 보이지않아, 누구하나 거들떠보지않는 고립무원 신세였다.

산고를 겪은 개점 멤버들의 신고라 할까 2005년 말 공단지점의 대출평잔은 120억여원을 기록했다. 시중은행들 입장에선 비웃음을 살 정도로 초라하고, 농협 내부에서도 꼴찌였지만 마냥 비난을 하기엔 주변환경이 너무 좋지않았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2007년 8월말 현재. 농협청주공단지점은 어떠한 모습일까.

이 지점장은 "365 자동화코너 이용객만 1일 평균 650여명에 달하고 있다"며 "이 역시 다른 은행들이 보면 비웃을 일이지만 최소한 이분들에게 만큼은 꼭 필요한 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대견스러워했다.

기업금융지원에 적극 나서 총여수신 규모는 2천5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출평잔은 1천500억원으로 1년6개월전보다 1천100%의 성장을 일궈냈다. 가히 믿겨지지않을 성과다.

올 초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단위 지점평가에서 183개 지점중 1위를 차지, 챔프 영업점으로 등극했다. 충북지역에서도 1등급으로 상위권에 랭크됨은 물론이다.

#"뒤통수 깨끗한 사람 되고싶어요"

무엇이 현재의 농협청주공단지점을 만들었을까. 성과급, 승진 등 개인의 물적 이익이 아니고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없어요. 표창을 많이 받다보니 시상금은 주어지지만 저나 직원 개인들에게 주어지는 물적 인센티브는 없어요. 특별승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더욱 궁금해 직원들에게 물어보았다.

"글쎄요, 성취감이나 자존심이랄까요. 월급만 축내며 마냥 꼴찌만 할 수는 없잖아요. 지점장님이 열심히 뛰길래 우리도 뛰었어요. 솔직히 힘들기도 했지만 지점장님과 함께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워요"라며 다시 지점장에게 공을 돌렸다.

집요한 질문과 대화끝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모두들 어쩔 수 없는 한계 지점으로 생각하니 바닥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자존심을 건 승부근성을 발휘했다. 4개월간 6㎏이 빠질 정도로 혼자서 열심히 뛰었다. 작은 시장을 극복하기위해 전국을 뛰어다녔다.

"할려고 하면 길이 나타나더군요. 무엇보다 농협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가장 큰 뒷받침이 되었지요"라며 "남들은 비가 오면 출근을 걱정하지만, 우리 농협인들은 수해봉사를 생각해 온 조직 문화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더군요"라는 말속에 농협인의 자긍심이 넘쳐났다.

실적이 오르기 시작하자 직원들이 동참했다.

그는 말 중간 중간, 눈물을 자주 보였다.

"두번 울었어요. 500억원과 1천억원을 돌파할때 직장 회식을 하면서요. 한번은 직원 부인이 전화해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놀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듣고 펑펑 울었어요. 그리고 진정으로 직원들에게 휴일날 절대 근무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래도 직원들은 스스로 나와 일을 했다고 한다. 책상, 의자를 차에 싣고 아파트 분양현장을 찾아 세일즈하고, 뛰었다고 한다.

뒤통수가 깨끗한 남자가 되고 싶다는 이 지점장.

실적에 급급해 선후배가 따로 없는 요즘. 후배들의 존경을 받으며 솔선수범을 실천하는 그의 모습에서 농협의 뭔가 다른 특별한 조직문화가 느껴졌다. / 박익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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