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벽주건물 등은 알고 있다
마구·벽주건물 등은 알고 있다
  • 조혁연 기자
  • 승인 2007.09.3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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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기 한일 문화교섭 정보를

한국고대사학회 학술대회, 충북대서 열려

마구(馬具), 벽주건물(일명 대벽건물), 횡혈식 고분 등에도 4~5세기 한·일 고대문화교류에 대한 정보가 듬뿍 담겨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마구의 경우 청주 신봉동 백제유물과 일본 관서지방 출토유물 사이에 친연성이 강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벽주 건물지: 정지산 벽주건물지 모습으로, 초석없이 기둥을 세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벽면이 기둥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둘레가 깊고 넓게 파여 있다. ■1조 선의 긴 引手가 결정적 증거=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와 한국고대사학회가 공동 주최한 '고대의 한일관계와 일본 近畿지역' 주제의 2007년도 고대 한일문화교류 학술대회가 28일 오후 충북대 인문대학 시청각실에서 열렸다. 첫번째 발표자로 나선 충북대 성정용(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近畿지역 출토 한반도계 초기 마구에 대하여' 논문을 발표했다.그에 따르면 마구는 ▶고도의 제작기술을 요구하고 ▶따라서 공인(工人)의 이주나 접촉이 있어야 관련 기술이 전수되며 ▶또 말(馬) 사육이 전제된 유물이기 때문에, 고대 문화교류사를 연구하는데 중요 유물이 되고 있다.이와 관련, 성 교수는 청주 신봉동에서 출토된 백제 마구와 일본 근기지역 3곳(小倉東, 行者塚, 宮山고분)의 고대 마구류를 정밀 비교했다. 그 결과, 두 곳 고분군에서 출토된 마구류는 형식상 친연성이 매우 강하고, 그 계보의 성립은 4세기 후엽~5세기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그는 그 근거로, 두 지역 마구 모두 '1조선의 긴 인수(引手)'를 갖고 있고, 금강 유역에서 공반 출토되고 있는 백제계 광구장경호 토기가 근기지역에서도 발굴된 점을 꼽았다. <용어설명 참고>성 교수는 이에 관련된 문헌적인 근거로 일본서기 응신천왕 15년조 대목을 들었다. '백제가 박사 아직지를 보내 좋은 말 2필을 바쳐, 아직지로 하여금 그 사육을 관장하게 하다'. 당시 백제는 아달왕 재위 기간으로, 서기 404년이 되고 있다.성 교수는 결론으로 ▶당시 한반도 도래인이 한-일 교섭의 한 축을 담당했을 개연성이 높거나 반도 이주세력이 근기 일대에 거주한 것으로 보이며 ▶함께 출토된 백제계 토기로 봐 그 시기는 4~5세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온돌, 토기 문화도 함께 전래= 두번째 발표자로 나선 한신대 권오영 교수는 '벽주건물에 나타난 백제계 이주민의 일본 기내지역 정착'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그에 따르면 일본 근기지역에는 벽주 양식의 고대 건물지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들은 백제에서 전래됐음이 구체적으로 이미 입증됐으나, 한반도 어느 지역과의 친연성, 도래인 성씨 등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이와 관련, 권 교수는 나가하라, 쿠즈와, 난고, 다카토리, 모리이가이도, 오오미, 토카이 등 근기지역 7개 벽주건물을 비교하는 한편, 함께 출토된 부뚜막, 연통, 토기류 등을 형태, 제작방법 측면에서 집중 분석했다.그 결과, 쿠즈와·다카토리·오오미는 백제 중앙세력과 친연성이 높고 나머지 유적은 백제 지방세력과 관련성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권 교수는 "다카토리 유적의 경우 함안출신 도래인이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토착성씨 야마토노아야히토(東漢氏)는 후대에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며 "이때의 '아야'를 음운적으로 분석하면 안나, 안야 즉 함안이 된다"고 밝혔다.이와함께 "도래인이 다카토리에 정착한 시기는 한성백제 함락(465년)과 시기적으로 비슷하다"며 "따라서 이들이 한성백제가 함락되면서 일본으로 이주, 벽주건물, 온돌문화, 한반도계 토기 등을 전래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웅략천왕이 군사 500명 보냈다"= 충청문화재연구원 이호형 조사연구부장은 '공주 단지리 횡혈묘군을 통해 분 고대 한일교류'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한반도 횡혈묘는 부여 능산리, 공주 안영리 등에서 발견됐으나 공반된 유물이 거의 없어, 성격 규명이 완전치 않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지난 2004년 4월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서 15기의 횡혈묘(橫穴墓)가 무더기로 발굴됐다.이와 관련, 이들 묘의 주인공이 누군인지를 둘러싸고 "왜인이다", "아니다"의 논란이 있어 왔다. 이 부장은 이에대해 전형적인 왜식 토기인 수혜기(須惠器)가 함께 출토된 점을 들어 "왜인 묘가 맞다"고 밝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덤 주인공이 어느 집단이고, 어떤 이유로 공주 단지리에 묻혔는가는 줄곧 역사의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이에 대해 이 부장은 "일본서기 '웅략천왕 23년조'(479년)에 '백제 삼근왕(문주왕의 아들)이 죽자 웅략천왕이 군사 500명을 보내 호송했다'는 내용이 나온다"며 "단지리 횡혈묘는 이들의 무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따라서 공주 단지리 횡혈묘군은 웅진백제와 왜가 단순 교류가 아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쳐 국제적인 교류를 했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유적이라고 그는 밝혔다.마구(馬具), 벽주건물(일명 대벽건물), 횡혈식 고분 등에도 4~5세기 한·일 고대문화교류에 대한 정보가 듬뿍 담겨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마구의 경우 청주 신봉동 백제유물과 일본 관서지방 출토유물 사이에 친연성이 강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구 : 청주 백제신봉동 고분에서 발견된 마구 모습으로, 일본 관서지방도 이와 비슷하다. 가로쇠가 재갈이고, 세로 모양은 引手에 해당한다.(上)

▶단지리 횡혈묘 : 산비탈을 옆에서 파고 들어가 그 안에 묘실을 만들었다. 발굴당시 입구는 폐석으로 막았고, 바닥에는 강돌이 깔린 경우가 많았다.

▶용어 설명

일본 近畿지역: 관서(關西)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오사카를 중심으로 교토, 나라, 효고, 시가, 와카야마현 등이 이에 속하고 있다. 동경은 관동지방에 속한다.

마구의 引手: '손으로 잡아당긴다'는 뜻으로, 순우리말로는 '고삐이음쇄'라고 한다. 고삐에 연결돼 있어, 이를 잡아 당기면 말입 재갈(銜)에 힘이 전달된다.

벽주건물: '도랑을 파서 그 안에 기둥을 세우고 흙벽을 주변에 바르는 건물 양식을 말한다. 초석을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구 건물이 아닌, 임시건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공주 정지산 건물지도 임시 재실 용도로 보여지고 있다. 일명 '대벽건물'이라고도 한다.

수혜기(須惠器): 전형적인 일본식 고대 토기로, 글자 그대로 '옆면을 깎아낸 토기'라는 뜻이다. 긁기, 문지르기 방법이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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